책 욕심이 부른 ‘학급 문고 도난 사건’
책 욕심이 부른 ‘학급 문고 도난 사건’
  • 북데일리
  • 승인 2006.08.03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욕심’은 불치병이다.

서점에 놓인 책, 도서관에 진열 된 책, 누군가의 책장에 꽂힌 책 모두가 ‘소유욕’ 의 대상이다.

어린아이라고 책 욕심이 없으란 법은 없다. ‘책 선물’ 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도 많다. 서점 아동코너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어린이들에게선 어른을 능가하는 뜨거운 독서열이 느껴진다.

창작동화집 <힘을, 보여 주마>(창비. 2006)의 ‘학급 문고 책 도둑 사건’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빌려보지 못하는 가난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을 사기는커녕, 빌려보는 것도 힘들어진 친구 세인이를 챙겨주는 착한 아이 겨레가 동화의 주인공이다.

겨레네 5학년 2반은 책 반납 문제로 말썽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처음, 아이들은 교실 한 쪽 책꽂이에 가득 찬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했다. 먼지를 턴다, 흐트러진 책을 정돈한다, 찢어진 부분을 투명 테이프로 붙인다면서 틈만 나면 학급문고를 아끼고 관리했다.

그러나 반납 날짜를 어기는 아이들이 나타나면서 이곳저곳에서 불평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책이 늘어나자 학급문고 모둠 반장 조성이는 세인이를 의심했다. 매일 책을 빌려가는 세인이가 아무도 없는 교실에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조성이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세인이는 하루 종일 빈 상자나 신문지를 모아 고물상에 넘겨도 이삼천 원 벌이 밖에 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어린 동생과 살고 있다. 세인이네가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는 조성이네가 다른 곳 보다 싼 전세 값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조성이는 평소 세인이를 못 마땅하게 여겼다. 책을 한 권도 내지 않은 세인이가 많이 낸 아이들과 똑같이 학급문고를 이용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겨레는 학급문고를 마치 제 것인 양 행동하며 세인이에게 책을 빌려주지 말라고까지 하는 조성이가 얄미웠다.

세인이가 학급문고에서 매일 책을 빌려 간 이유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 집 안에만 있는 동생 정인이 때문이었다. 책은 정인이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던 겨레는 세인이가 안쓰럽기만 했다.

겨레는 세인이를 위해 책을 빌려다 주기로 마음먹는다.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빌려 줄 테니까 조성이 자식 눈치 안 봐도 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빌리면 조성이가 알아채지 못한다는 생각에 떠올린 ‘기특한’ 아이디어였다. 어른의 것 보다 크고, 넉넉한 겨레의 마음이 배려를 잃어버린 ‘메마른’ 마음을 부끄럽게 만든다.

세인이는 겨레가 건네준 책을 받아들며 빙긋이 웃었다. 겨레도 세인이를 따라 웃었다. 세인이가 자신을 알아주는 것이 그저, 기뻤다.

안타깝지만, 흐뭇한 이 장면이 엔딩은 아니다.

동화는 잔인한 현실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서글픈 엔딩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는 작가 박관희는 2002년 ‘어린이문학’ 지에 ‘내 짝꿍은 빡빡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빡빡 머리 엄마>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공동창작집)를 펴냈으며 <힘을, 보여 주마>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다채로운 문체와 형식을 시도했다.

(사진 = 광주서구문화센터 어린이도서실 `꿈시루`)

[북데일리 정미정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