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사랑`은 마술같은 우연
`잊을 수 없는 사랑`은 마술같은 우연
  • 북데일리
  • 승인 2006.07.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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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통찰력과 철학적 사유로 독자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알랭 드 보통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 그래서 그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1990)을 읽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고,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보통의 이야기도 따라가기가 힘든데. 역시나 그러했다. 몇 번을 곱씹어 보고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덕분에 내 자신에 대해 반성 좀 했다. 겨우 이 정도라니, 정작 가벼운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해받지 못한 말들 때문에 프란츠를 떠난 사비나처럼 나도 이 책을 떠나야 하는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도 보고 싶어진다.

이 책에는 크게 4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토마스, 의사라는 묵직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영혼은 가볍기 그지없다. 고향을 떠난 토마스는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유리 닦는 일을 한다.

테레사, 토마스의 공식적인 여자친구. 토마스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가벼운 직업인 술집 종업원이다. 그러나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자신의 영혼은 무겁게 보이길 원한다.

─ 책은 그녀에게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상상적 도피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p58)

사비나, 토마스의 오랜 친구이자 화가.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녀의 무겁고 가벼움의 판단을 할 수가 없다. 판단유보.

프란츠, 토마스가 테레사를 찾아 떠난 후 만난 대학 교수이다. 테레사는 그가 대학 교수라는 진중한 직업을 가졌기에 그를 만났지만, 그의 영혼은 그다지 진중하지 못했다. 사비나는 프란츠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말들 때문에, 자신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그의 곁을 떠난다.

─ 여자라는 것, 사비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녀가 선택하지 않은 하나의 조건이다. 선택의 결과가 아닌 것은 장점이나 실패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강요된 상태와 대면할 경우 이에 대응할 적절한 태도를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 사비나의 생각이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그녀에게 부조리하게 보였다. (p104~105)

사비나가 프란츠에게 이해받지 못한 말들 중에 하나이다.

─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의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날아가버려, 지상적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기껏해야 반쯤만 생생하고 그의 움직임은 자유롭다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을 택할까? 묵직함, 아니면 가벼움? (p11)

─ 우리 모두에게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p44)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겁거나 가볍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묵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라고 묻고 있지만, 정작 그는 무거움에 가치를 더 두고 있다. 무거울수록 우리 삶은 생생하고 진실해진다고 하니. 테레사도 묵직해지고 싶어서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그 묵직함과 가벼움의 경계를 모르겠다. 그것의 정의(definition)는?

─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수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이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초벌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초벌그림>이란 용어도 정확지 않은 것이,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다.

토마스는 독일 속담을 되뇌였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p14~15)

─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번째, 세번째, 혹은 네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p256)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와 부딪치며 서로 다른 결정을 해야할 때도 있고, 확실치 않은 미래에 불안해 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서 연습이란 없기에, 단 한 번뿐인 삶이기에 그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은 오롯이내가 치뤄야 할 몫이다. 한 번은 중요치 않다고 했지만, 한 번뿐이기에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한 번뿐인 내 젊음을, 내 하루를 왜 이렇게 허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중요한 내 삶인데.

─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미래 속으로 도망친다. 그들은 시간의 축 위에 하나의 선이 있고 그 너머에는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상한다. (p190)

그러고보면, 난 참 어리석은 사람인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 속으로 도망칠 때 난 과거로 도망쳐 버리니 말이다. 미래엔 희망이 있지만, 과거엔 후회만 남아있을 뿐인데...

─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시을 도와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지에 따라 네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익명의 무수한 시선, 달리 말하자면 대중의 시선을 추구한다.

두번째 범주에는 다수의 친숙한 사람들의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대주을 잃으면 그들 인생의 무대에 불이 꺼졌다고 상상하는 첫번째 범주의 사람들보다는 행복하다.

그리고 세번째 범주가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의 조건은 첫번째 그룹에 속한 사람들의 그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기면 무대는 칠흑 속에 빠질 것이다. 테레사와 토마스를 이런 사람들 속에 분류해야만 한다.

끝으로 아주 드문 네번째 범주가 있는데, 부재하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몽상가이다. 예를 들면 프란츠가 그렇다. (p307~308)

읽다보니 참 명쾌하게 범주를 나눠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주 드문 몽상가형 인간이다. 두번째 혹은 세번째 범주의 인간으로 살고 싶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 결과 네번째 인간이 확실하다.

당신은 어떤 범주의 인간인가요?

─ 테레사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의 한 쌍을 괴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는 다른 무엇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사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신의 모습에 따라 바꾸려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 것은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p338~339)

<브릿지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가 브릿지에게 그랬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겠다고. <소문난 칠공주>에서도 그랬다. 사랑을 확인하려 하지 말라고.

그들도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들 사랑에 울고 웃는 것이다.

[북데일리 이명희 시민기자] heeya1980s@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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