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재 작가 “산사의 종소리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정현재 작가 “산사의 종소리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4.06.03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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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이 내면의 깊은 골에 닿을 때까지...”
7~28일 경남교육청 제2청사 갤러리 초대전
정현재 작가 작품
정현재 작가 작품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나는 그동안 캔버스와 싸움을 해 온 것 같다. 붓과 나이프로 치대고 치댔다. 작업실 사방 벽마다 겹겹이 세워져 있는 작품들이 전리품처럼 느껴진다. 지난 10년간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남들은 화가로서 열정의 시간들이 오롯이 스며있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가늠해 보기 위해 지난 겨울 훌쩍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으로 떠났다. 많은 것을 보았지만 가슴속엔 여전히 찬바람만 불었다. 6월 7일부터 28일까지 경상남도교육청 제2청사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정현재 작가의 이야기다.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진 자리에 새로 세워진 빌딩이 마치 사원처럼 느껴졌고, 화려함 뒤에 있는 슬픔, 무거움, 쓸쓸함이 반갑지 않은 친구처럼 찾아왔다. 새봄 같은 희망도 그리웠다. 차분한 색으로 그것들을 채색하고 싶어졌다. 그러자 ‘그래 내겐 그림은 치유이자 목적이었지’라며 혼잣말이 터져버렸다. 흐르는 물감이 제자리를 찾듯 마음의 평화도 그리 됐으면 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과거인지 추억인지 회한인지 영겁인지 찰나인지 아님 미래 기대 희망 두려움 어떤 걸까!. 어떤 것이 됐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

그는 요즘에서야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 시급함을 절감한다. 그동안 지금여기가 아니라 과거,미래에 휘둘려 살아왔다. 나이프로 캔버스에 수많은 상처들을 새겨나가듯이 작업을 했왔다. 파도처럼 생각에 생각들이 밀려오는 것에 지치기도 했다. 생각들의 주도권을 줘야 하는 것이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기까지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릴줄을 몰랐다.

그의 작품 제목들에서 그 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신’이란 ‘어떤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호칭이다. 화자에 따라 당신은 ‘너’가 되기도 하고 ‘그’가 되기도 하고 ‘나’가 되기도 한다. 신분이나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포괄하는 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어 뉘앙스도 풍성하다.

정현재 작가 작품
정현재 작가 작품
정현재 작가 작품
정현재 작가 작품

"당신의 시선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시선이자 각각의 개성적 시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시선’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시선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눈길이며, 시각 정보로 전환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 내는 가늠자의 역할을 한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거나 생각을 보듬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타인과 대화도 가능하게 한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시선의 문제는 작품에 독자적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결국 정현재 작가가 채택하고 있는 화두로서 ‘당신의 시선으로’는 우리 모두 각자가 지닌 세계관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담아내고 있다.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말에는 유기적인 세계관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유기적 세계관이란 열어가는 세계관이다. 인식 주체로서 너와 그와 나가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인과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너와 그와 나라는 주체들의 시선은 불변하거나 고정적인 어떤 실체가 아니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며 유동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화두는 불가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 미술사가)

정현재 작가는 특정 주제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택하고 있다. 풍경에서 정물에 이르는 주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들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의심케 할 정도다. 뒤늦게 화업의 길에 들어서면서 미술사의 다양한 표현 방식들에 매혹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당신의 시선으로’ 다채로운 주제와 형식들을 하나로 수렴해 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예술이 특정한 작가가 주도하는 의미 생산의 형식이란 점에서,실험과 도전 정신은 작가 자신의 고유한 형식과 내용에 이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그는 이번 개인전을 계기로 특정 주제와 그에 적합한 특정 형식을 ‘한 우물 시리즈’로 제작하는 방식을 통해 이를 구현해 나갈 예정이다. 이재 그의 캔버스위 나이프춤은 숨을 고르고 있다.

“깊은 산사의 종소리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붓질이 내면의 깊은 골에 닿을 때까지...”

정현재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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