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김영재 작가
진정한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김영재 작가
  • 임채연 기자
  • 승인 2024.05.03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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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21일 인사1010갤러리 ‘길 끝에’전
바다, 숟가락 인간군상 시리즈로 삶을 사유
김영재 작가
김영재 작가

[화이트페이퍼=임채연 기자] “ 좌절과 절망의 시기에 나는 길 끝에서 바다와 인간 군상들을 만났다. 사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매개체다. 나에게 예술은 위안이자 삶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세파가 거셀수록 카메라를 더욱 움켜쥐고 맹수처럼 피사체에 몰두해 온 김영재 작가가 5월 9일부터 21일까지 인사1010갤러리에서 ‘길 끝에’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다와 인간군상 시리즈를 보여준다.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이다. 숨이 가쁠 정도였다. 그럴때 마다 예술은 나의 삶의 쉼표이자 나를  직시해 볼 수 있는 거울이 돼 주었다. 물속에 빠지지 않고 수영을 하려면 물의 리듬을 타야 하듯  예술은 나의 삶의 리듬이 돼주었다.” 

김영재 작가는 사진의 리얼리티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가다. 요란하지 않지만 바다와  인간군상 시리즈가 삶을 되돌아 보게 하고 사유케 해 준다는 점에서 진정한 리얼리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삶의 모드가 사진의 모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노에마(사유작용)가 일어난다는 것은 작가가 치열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다. 사진예술 안에서 자신만의 집을 지어간다는 얘기다. 

일찍이 19세기 서구 미술사는 양식style의 시대에서  이즘ism의 시대로 전환됐다.  미술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예술로 변모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리얼리티에 대한 풍부한 담론이 형성됐다. 같은 맥락에서 김영재 작가의 리얼리티에 대한 치열한 주체의식이 사진예술 향유의 폭을 넒혀 주고 있다. 교감과 공명의 리얼리티라 하겠다.

바다 시리즈
바다 시리즈
바다 시리즈
바다 시리즈
바다 시리즈
바다 시리즈

김영재 작가의 바다사진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해무 낀 풍경이  마치 동양화의  운무산수화 같다. 동양화에서 운무풍경을 즐긴 이유는 기세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 여백처리된 운무가 전형적인 예다.  수묵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김영재  작가는 그런 맛을 사진으로 구현하고  있다.  수묵 맛이 나는 사진으로 바다의 역동적인 기세를 잡아채고 있는 것이다.

동양화에선 기암괴석이나  산봉우리 그리고 암벽, 수목, 돛배와 같은 독특한 이미지의 물상들을 세부적인 묘사보다는  실루엣으로 드러낸다. 그 외의 것은 운무에 가려진 모호한 풍경이 된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오묘한 정취인 유현미(幽玄美)가 발현되는 지점이다.  

  잔잔한 해무를 배경으로 돌출된 돌덩이(몽돌)들도  보인다. 해무에 어렴풋이 싸여 있는 풍경이다. 썰물 때 드러난 돌덩이들은 해초의 옷을  입고 있다. 물살이 만든 굴곡진 바닥면과 어울려 언뜻 보면  유장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사진의 격을 한단계 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흑백사진에선 수묵의 맛을,  컬러사진에선 수묵담채화의 맛을 진국처럼 끓여내고 있다. 동양화에서 먹으로 그린 그림에 엷은 채색(담채, 淡彩)을 더한 것을 수묵담채화라고 한다. 색이 중심이 되는 채색화와 달리 수묵담채화는 먹의 농담 효과를 기본으로 하고, 여러 가지 색은 보조적으로 사용한다.  적절한 여백과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 이유다.

  김영재 사진의 또 하나의 매력은 선염(渲染)기법의  바림효과까지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염기법이란  동양화에서 분무기로 한지를 먼저 적시고 마르기 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가하여 표현 효과를 높이는 기법이다.  붓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은은한 표현 효과가 나타난다. 안개 낀 산수의 흐릿한 정경이나 우중(雨中)의 정취, 으스름한 달밤의 풍경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다. 먹이 번지면서 흐릿하고 깊이 있는 색이 살아나는 바림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영재 작가는 빛이 결핍된 환경에서, 예를 들어 흐린날씨에 빛이 대상에 천천히 스며드는 찰나를 포착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바림효과를 살려내고 있다. 고도로 숙련된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다. 

 최근들어 작가는 제주해안의 주상절리에 꽂혀 있다. 해안에  육각형 단면의  돌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서 수직을 이루는 풍경이다, 화산폭발이 만들어 놓은 절경이다. 작가는 여기서 바다라는 수평과 주상절리라는 수직은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에선   인간의 노동으로 일궈낸 구조물(김 양식장 등)의 조형미가 어우러진 바다를  즐겼다.   끝없이 바다에 박힌 나무말뚝들은  대를 이어 일군 삶의 텃밭이자 바다 위에 그린 ‘숭고한 그림’이란 생각에서다. 어쨌건 기존의 수평구도에 수직구도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수직수평의 구조는 단순,심미,절제의 미로  현대미학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사진은 물론 현대미술에서도 중시되는 이유다. 현대추상미술의 대표작가인 피에트 몬드리안도 수직은 생기를,수평은 평온함을 나타낸다고 했다. 수직과 수평의 두 선이 적절한 각도에서 서로 만나면 안정감과 포근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김영재 사진에서 바다라는 수평과 주상절리라는 수직이 만나는 지점도 그렇다. 작가의 사진이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표현의 단계로 깊게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인간 군상 시리즈
인간 군상 시리즈
인간 군상 시리즈
인간 군상 시리즈

김영재 작가는 어느날  황학동 중고시장에서  숟가락 더미를 보고  문뜩 인간군상을 떠올리게 된다.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작가는 숟가락에서 인간 존재모습을 본다. 의자 밑에 수북히 쌓여있는 숟가락 모습은  돈 명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의 정경처럼 보였다,  의자라는 자리에 기어오르기 위해 벌이는 전쟁터 같은 처절한  모습은 설치작품으로 형상화 되고 사진작품이 됐다. 수공적  메이킹포토 작업이라 하겠다. 

 김영재 작가의 숟가락 조형은  진화를 거듭해 어느때부턴가 지구를 이루고, 한데 어우러진 인간군상의 형태를 띤다.  1980년대에 제작한 이응로 화백의 군상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배경없는 바탕에  몇 개의 선으로만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던 이응로 화백은  표정이나 입체감 없이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읽혀지게 했다. 수묵화의 자유로운 필치와 생동하는 기운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붓으로 글씨를 쓰듯 추상으로 그려진 인물 형상에서 서예적 필력이 느껴질 정도다. 동양화의 사의성(寫意性)과 서양화의 추상성을 함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재 작가가 숟가락을  구부리거니 꼬아서 만든 인간군상들과 흡사하다. 이응로 화백의 기운생동하는 정신성과 필획의 조형성을 빼닮았다. 

김영재 작가는 이응로 화백이 생전에 남기 ‘ 모두 손잡은 율동은 공생공존이고  그것이 평화’라는 말에 가장 공감한다. 숟가락 지구,숟가락 인간들의 메시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오색바탕의 인간군상 작품은 조화로움이 평화세계의 바탕임을   말한다.

 김영재 작가의 이런 작업 배경에는 한때 몰입했던 장터사진이 있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린시절 고향을 추억케 하는 향수가 작업의 원동력이었다. 

‘10여년간 장돌뱅이처럼 이 장 저 장 시골장터를 누볐다. 사람 냄새가 그득한 장터가 그저 좋아서다.  바람처럼 장터를 휘젓고 다니며 때론 거칠어 보이지만  알몸 인간들의 치장하지 않은 순수에 취했다.“ 

 작가에게 장터는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시간들을  그곳에서 만난다. 세월의 사연들이 켜켜이 쌓인  노파의 깊은 얼굴 주름과  거친 손이 말을 한다면 그저  듣고 싶을 뿐이다. 순수함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거짓이 없는 렌즈 속 그런 세상이 좋다. 소주 한잔 값도 안 되는 나물들을  들과 산에서 뜯어  와 새벽부터 좌판을 지키고  있는 노파의 모습에서 저세상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파장으로 땅거미가 내리는 저편 길로 사라지는 왜소한 노인의 뒷모습은 여전히  눈에  밟힌다, “

 작가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장터의 정겨운 풍경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의  자산이자 가치라고 말한다. 그런 장터 풍경들을 영원히 카메라  자물쇠로 잠가놓고 싶은 이유다.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장터는 연민의 발로다. 누군가가 말했듯 연민은  신의 손길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응로 화백이 말했던 ‘손잡은 율동’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했던 것은 서로 소통하며 돌봐야 하는 존재를 얘기했던 것이다. 연민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응로 화백의 수묵 군상과 김영재 작가의 숟가락 군상이  이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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