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에 판매량 감소세
정면돌파 내건 현대車그룹
新 공장·생산체계 도입…글로벌 시장 장악력↑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글로벌 전기차 시장 약세에 정면 돌파를 승부수로 띄웠다. 비싼 가격, 보조금 축소, 저가형 전기차 강세 등으로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판매량이 감소했음에도 투자를 확대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직접 현장을 찾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전기차 '퍼스트 무버'를 굳히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8일 업계예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각 23만대, 15만100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두 회사 모두 한 해 판매 목표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목표량(33만대)의 70%, 기아는 목표량(25만8000대)의 59%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남은 2개월의 집계가 더해지더라도 목표량에 닿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던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결과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전기차의 높은 가격과 각국의 친환경차 보조금 축소,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강세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평균 가격은 6만1488달러로 한화 8000만원에 육박했다. 이는 내연기관 승용차와 트럭의 평균 가격인 4만9507달러(약 6290만원)보다 월등히 비싼 수준이다. 배터리가 핵심인 전기차는 값의 상당 부분을 배터리가 차지한다. 통상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는 40%까지로 알려졌다. 배터리 가격이 현저하게 내려가지 않는 이상 선뜻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작용한다.
보조금 축소도 구매자들의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환경부는 전기차 보조금 예산으로 2조3988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올해보다 6.5% 축소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차종별 보조금이 100만원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를 비롯한 독일, 중국, 영국 등도 보조금 정책을 손질하고 나섰다. 영국은 지난해부터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폐지했고 중국은 오는 2024년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독일은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내년부터는 4만유로 이하의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단계적인 폐지를 시사했다.
저가형 중국산 전기차 공세도 현대차·기아에겐 골칫거리다. 중국 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와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량에 테슬라 '모델Y'(4만7164대)가 이름을 올렸는데 2~4위는 모두 중국 BYD가 차지했다. 소형 전기차 '시걸'(4만3350대)을 포함해 '위안 플러스'(4만19대) 등이 테슬라의 뒤를 바짝 쫓았다.
중국산 전기차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도 세를 키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1억7200만달러)은 독일(7000만달러)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 8월 처음으로 수입액 1위에 이름을 올린 뒤 3개월 연속으로 최고액을 차지했다. 중국산 테슬라인 '모델Y RWD'의 수입량 증가에 더해 중국산 전기화물차·상용차 등이 대거 유입된 영향이다.
현대차·기아는 이 같은 상황에도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나섰다. 판매량 축소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판단에 따라 시장에서 파이를 키우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나서 유럽과 인도네시아 등 주요 시장에서 몸집을 키우는 한편 신공장을 건설하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울산 전기차(EV) 신공장 착공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지난 13일 울산공장 내 전기차(EV) 신공장 부지에서 울산 EV 전용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울산 EV 전용공장은 54만8000㎡ 부지에 연간 20만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규모로 세워진다. 현대차는 2조원을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정의선 회장은 기공식에서 "전동화 시대를 향한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싱가포르에는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준공했다. HMGICS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생산 방식인 ‘셀’ 시스템은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생산 공정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기존 대량 생산·공급 체계를 갖춘 공장이 아닌 다차종 소량 생산을 내걸면서 비전을 내비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HMGICS가 갖춘 연산 3만대의 생산 능력은 기존 생산공장의 2%에 불과하다. 고객의 요구에 맞춘 차량을 소량 생산하겠다는 의지다. 새로운 사업 방향성까지 내포했다.
HMGICS의 셀 생산 체계는 손질을 거쳐 울산 EV 신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정의선 회장은 "(HMGICS 기술로) 다른 공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차를 생산하고 코스트(비용)를 줄일 수 있으면 싱가포르 공장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키우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올해 1~10월 현대차·기아·제네시스 등 현대차그룹 3사는 영국 자동차 시장에서 승용 기준 17만3428대를 팔아 치웠다.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포함한 친환경차 판매 대수는 8만442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 늘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모두 상승세를 기록한 덕이다.
전기차 차종을 늘려 수요에 대응한 점이 주효했다. 현대차는 지난 2021년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아이오닉 6', 'GV60', 'GV70 EV', 'G80 EV', '코나 EV' 2세대까지 현지 라인업을 확장했다. 기아도 2020년 '쏘울 EV', '니로 EV'를 시작으로 'EV6', 'EV9'까지 판매 차종을 늘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해 장악력을 키웠다. 지난 7월 기준 전기차 3913대를 판매해 시장 점유율 56.5%를 기록했다. 현지 전기차 두 대 중 한 대꼴이다. '아이오닉 5'의 현지 생산·판매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판매량이 늘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에서 배터리 핵심 원료인 니켈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제2의 시장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공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