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정부 눈치보나...고유 권한도 행사 못해
한은, 정부 눈치보나...고유 권한도 행사 못해
  • 고수아 기자
  • 승인 2021.10.18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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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금융위 등 관계기관 합동 가계부채 대응방향(왼쪽), 2016.10 국회 기재위 한은 국정감사 속기록. (자료=금융위, 국회)
2015.12 금융위 등 관계기관 합동 가계부채 대응방향(왼쪽), 2016.10 국회 기재위 한은 국정감사 속기록. (자료=금융위, 국회)

[화이트페이퍼=고수아 기자] 금융위원회가 고강도 대출 총량규제를 추진하다가 각종 비판이 쏟아지면서 말을 바꾼 가운데, 한국은행은 고유 권한도 행사하지 못할 정도로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대한 한은의 입장은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주열 한은 총재는 "대출 총량규제의 실패, 성공 여부를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어 "제가 5년 전에 발언한 이것은 사실상 지금도 저희는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답변은 이번 국감에서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출 총량규제에 대한 지난 2016년 국감 당시 이 총재의 질의 내용을 재조명하면서 나온 것이다. 당시 이 총재가 여러 부작용을 언급하며 대출총량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준영 의원은 "(한은이) 그때는 반대를 했고 이번은 금융위가 추진하고 나왔는데 아무런 코멘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은법 28조는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신용정책에 관해 극심한 통화팽창기 등 국민경제상 절실한 경우 일정한 기간 내의 금융기관의 대출과 투자의 최고한도 또는 분야별 최고한도의 제한을 심의·의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0월 4일 한은 국정감사 속기록을 보면 이 총재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제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질의에 '이 규제는 의도하지 않은 어떤 부작용도 가져올 수 있다'며 여러 문제점을 얘기한 바 있다.

이번에도 이 총재는 "한은법 28조에서 보면 금통위가 정할 수 있다. 단 한은법에는 '극심한 통화팽창기 등 국민경제상 절실한 경우'라는 단서가 달려있어 항상 금통위 입장에서 보면 이걸 판단하는 데 상당히 신중을 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 경제학자들 "한은 제 역할 안해...정책 협조만"

이런 배경 아래 경제학자들도 한은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도 눈치보기 식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거시경제 안정을 위한 제 역할을 방관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금융시스템에 현저한 문제가 생겼거나 사안이 급박해 한은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지 않는 상황이지 않나"며 "실상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 부동산 가격 폭등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책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가 생긴 이유는 부동산 문제, 규제 정책으로 인한 것이고, 이것은 거시경제 안정 차원에서 연결된 문제"라며 "한은이 정부에 대해 쓴말을 하지 않는 것은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재의 대출 총량관리가 집값과 전셋값이 오를대로 오른 상황에서 진행 중이며, 지금은 서민 실수요자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변질됐다고도 설명했다. 또한 대출 총량규제 자체는 위험한 정책 내지 실현불가능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실수요에 대해서 (대출을) 열어준다고 했는데 당연히 열어줘야 하는 것이고 이번에 금융위가 정한 6%를 강압적으로 달성하겠다 달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렇게까지 꽉 막힌 정책을 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안 교수는 "6%대, 4%대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지 않을 정도로 타당성이 있는 것이냐에 대한 질문은 할 수 있다"며 "목표로 한다는 것이지 강압적으로 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그런 식으로 고집을 한다면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도 "어떻게 보면 위험한 정책이고 반시장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정말 긴박한 시기에 쓰는 극단 처방이다. 이를 (국민들에게) 잘 알리지도 않고 했다 안 했다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도 "금융취약계층, 소득이 낮은 계층, 젊은 세대에게 타격을 준다"고 지적했다. 

■ 일본의 정책실패→'잃어버린 20년' 답습 말아야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가 일본의 오답노트를 밟지 않기 위해서도 한은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은은 앞서 2012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한국에의 시사점'이라는 자료를 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80년대 후반 형성된 거품에서 비롯됐다. 주가와 땅값이 1987년부터 1990년까지 3배 가까이 상승하자 자산가격 거품을 우려한 일본은 1989년 5월 이후 급격한 금융긴축을 단행했고, 1990년 3월 부동산 관련 대출 총량규제를 시행함에 따라 자산가격은 붕괴된 바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이 1~2년 내 회복기에 재진입한 반면, 일본의 장기 침체가 이어진 이유에는 ▲정부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거품 붕괴의 심각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 성공 신화에 매몰돼 ▲과감한 구조조정 대신 거품을 초래한 기존 시스템에 안주한 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인구 고령화라는 구조적 요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는 것이 한은 분석이었다.

김태기 교수는 "일본이 정책 실패한게 굉장히 많은데 (우리는) 그대로 베껴오고 있다"며 "일본이 오늘날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재정정책 가지고 현상유지 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새로 산업을 만든다는지 규제를 확 푸는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이 된 건데 우리는 금융, 재정, 한국은행까지 아무 말 못하고 있다"며 "한은이 정부에 대해서 쓴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준모 교수도 "유동성 관리는 금리를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를 혼동해서 하는데 사실은 하시모토가 일본에서 총량규제를 함으로써 집값을 잡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왔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또 "작년에 여러가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이미 정책당국의 직무유기 측면이 있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도 맞지 않았던 부분에서 지적이 가능하며, 언제부터 언제까지 한다고 제대로 알리지 않고 문제가 되니까 뺐다가 또 언제 다시 할지 모르도록 예측 불가능하게 정책의 실시 과정에서도 불확실성만 만들었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그건 정책의 기본이 안 된 잘못된 정책이다. 이에 대해 정책당국도 할 말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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