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울할 때 꺼내 펼쳐야 할 책
가장 우울할 때 꺼내 펼쳐야 할 책
  • 북데일리
  • 승인 2006.06.0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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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존 키츠(1795.10.31 ~ 1821.2.23)가 죽기 전 100일 동안의 시간을 담은 <죽기 전 100일 동안>(마음산책. 2002)은 `가장 우울 할 때 꺼내 들어야 하는 책`이다. 25살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시인, 존 키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삶의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존 키츠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동생에게 옮겨받은 폐결핵과 싸우는 고된 과정을 처절히 묘사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존 키츠가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인 패니에게 모든 이성과 감성을 빼앗기고 사랑에 집착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수십 통의 편지에서 시인의 감수성은 절정에 달한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나는 어제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아래에서 편지를 썼어요. 당신에게 고통을 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나는 편지를 부치려고 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당신에게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사실 나는 당신에게 온통 매달려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나는 당신에 관한한 탐욕스럽습니다. 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활하지 말아주세요. 나를 잊지말아주세요. 나는 내 `삶`에서 당신의 사랑에 대한 확신만 보고 있어요. 그런 확신을 얻지 못한다면 나는 고뇌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다른 남자나 여자들처럼 사랑해서는 안돼요. 나는 유행의 맹독(猛毒)과 허례허식과 수다스러움을 용납할 수 없어요. 만약 당신이 나의 여자라면 내가 원할 경우 고문대위에서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요”

탐욕, 맹독, 고문대라는 단어들이 서슴지 않고 쓰여 있는 이 편지는 사랑으로 ‘죽어가고 있는’ 한 청년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존 키츠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패니 만들어낸 고뇌와 불확실성 때문에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완쾌되었을 때 패니가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신체적 건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까지 써내려 간다. 미칠듯한 애정을 고백하다가도 “나의 열정이 당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고 말해줘요” 라는 낮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스물다섯 살의 젊은 육신이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동안 패니는 온갖 파티에서 남성들에게 추파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병든 육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좁은 방에 쓰러져 피를 토하며 연애편지를 쓰는 것뿐이다. 천재시인의 애절한 영혼의 노래와 삶에 대한 절실함이 읽는 이의 심장을 흔든다.

<죽기 전 100일 동안> 안에는 전기소설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아까운 요소들이 많다. 사랑에 대한 절절한 호소, 생에 대한 간절한 집착, 시인 존 키츠의 풍부한 감수성은 이 책만이 갖고 있는 보석같은 질료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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