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發 ‘나쁜은행’ 낙인...은행에 코로나보다 더한 악재는 관치(官治)
[기자수첩] 정부發 ‘나쁜은행’ 낙인...은행에 코로나보다 더한 악재는 관치(官治)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12.18 16: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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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최근 필자가 은행권 사람들을 만나보면 모두 비슷하게 하는 말이 있다. ‘정부가 시중은행을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공공기관은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으로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설립, 운영되는 기관이다.

시중은행은 예금을 자원으로 개인과 기업에 장·단기 대출을 실행하여 이익을 내는 상업은행이다. 상업은행의 제1의 경영목표는 이윤의 극대화이다. 민간기업이라는 의미다. 민간기업은 민간이 출자하고 경영하는 기업이며 공공기업과 성격이 다르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전형적인 기업 형태이다. 다만 업무 운영으로 인한 영향이 국민 경제 전반에 걸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은행법과 한국은행법 테두리 안에서 규제를 받는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서민의 돈으로 이자놀이 하는 나쁜 은행’으로 몰아가기 바쁘다. 코로나가 창궐한 3월, 대출 심사 기준 완화부터 고소득자 대출 조이기, 충당금 확대 권고, 배당축소 등 갖가지 이유로 은행에 압박을 행사하더니 이제는 대출 폭증에 따른 이자수익을 두고 ‘은행의 폭리’ 때문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여당의 최고위원은 “사상 최고치로 급증한 가계부채로 은행은 앉아서 연 35조원의 이자수익을 챙긴다”며 은행을 ‘나쁜 은행’으로 낙인을 찍었다.

실제로 올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통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늘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일 발표한 ‘2020년 11월 금융시장 동향’ 보고서를 보면, 정책모기지론을 포함한 11월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982조1000억원으로 전달보다 13조6000억원이 늘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만 전달보다 6조2000억원 증가했고, 생활자금과 주식투자 등에 흘러갔을 것으로 추측되는 기타대출이 7조40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35조원 규모의 가계대출 이자수익과 관련, 생기는 의문점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가계대출이 역대급으로 불어난 게 은행 탓이냐는 것이다. 사실 예금과 대출로 회사를 영위하는 은행의 경우 대출실적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익도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겨야 할 대목이다. 은행은 대출이 폭증했다고 정부와 당국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늘어난 대출 수요에 맞게 대출을 실행하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실대출(NPL·부실채권)과 이를 수습할 여력을 마련하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은행의 가계대출이 이토록 천문학적인 수치로 치솟은 것은 은행이 국민을 꼬드긴 게 아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을 내 투자), 코로나발(發) 생계자금 등 돈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창구에 앉아 지나가는 고객에 대출받으라 권유하는 게 아니다. 돈이 필요해진 사람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빌려가는 것”이라며 “대출 증가가 은행 탓이라면 주식투자 급증과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도 은행 탓이냐고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나쁜 은행 낙인의 근거가 된 예대금리차 증가는 은행의 욕심에서 나타난 현상일까. 올해 은행권 예대금리차는 전년보다 10bp 가량 커졌다. 이를 두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은행이 적절치 못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예대금리차란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것으로 예대마진이라고도 불린다. 예대마진이 늘어날수록 은행의 수입은 그만큼 커진다.

예년과 달리 올해 예대금리차가 소폭 상승한 것은 최근 가계대출 총량관리에 들어간 은행이 가계대출 금리를 일부 인상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출을 조일 것을 압박했다. 대출심사 기준을 완화해서라도 돈이 필요한 자에게 무조건 대출을 실행하라는 코로나 사태 발생 초기 압박과는 정반대의 압력이었다. 이에 따라 은행은 줄줄이 대출 한도와 우대 금리 축소에 이어 대출을 아예 중단하고 있다. 상환 여력이 충분한 고소득 고객은 은행에 우량 고객이긴 하지만 속된 말로 표현되는 ‘까라면 까야 하는’ 은행 입장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 논리로 결정되는 금리를 가지고 이렇게까지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고 생각된다”면서 “은행이 규제산업이라고 해도 민간기업인데 복지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억울하기도 한데 답답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신한·하나·우리·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은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위해 연수원 700여실을 생활치료센터 등으로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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