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배당 축소하라고요?...“시장에 찬물 끼얹는 게 당국 역할인가”
[기자수첩]배당 축소하라고요?...“시장에 찬물 끼얹는 게 당국 역할인가”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12.11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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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게 그들 역할인가 싶다.”

필자가 만난 금융투자업계 사람이 한 말이다. 최근 금융지주는 연말 배당을 놓고 금융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고심하고 있다. 금융지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내년 리스크 대비를 위해 배당을 자제하라는 당국의 압박과 주주가치 제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에 배당 자제령을 내린 것은 배당보다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와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대손충당금 쌓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은 얼마나 늘어날지, 또 올해 대출받은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뒷받침될지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이를 감당하고 수습할 수 있는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 놓으라는 말이다.

금융지주는 당국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배당 축소가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국의 배당 자제령에 투자자들의 반발 또한 거세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금융주 연말 배당 축소를 반대한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의 핵심은 ‘사기업에 대한 배당 축소를 정부에서 강요할 수 없고 주주가치를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이다.

기존 주주들의 이탈도 금융지주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코스피가 코로나19 팬데믹 초반보다 25% 가까이 급등하는 동안 신한지주,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는 최대 25%까지 하락했다. 연말 배당 시즌이 되면 더욱 각광을 받는 고배당주로 통하지만 올해는 배당 축소라는 찬물이 끼얹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금융주는 역대급 실적과 주가 부양을 위한 지주 회장들의 잇따른 자사주 매입, 쏟아지는 내년 한국 증시에 대한 장밋빛 전망 등 각종 호재 속에서도 금융주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올해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서도 역대급 실적을 이어왔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의 경우 3분기에 금융지주 체제 출범 12년 만에 최초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금융지주는 실적만 역대급인 게 아니다. 코로나19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대비한 충당금 또한 역대 최고치 수준으로 쌓았다. 여기서 충당금을 더 늘리라는 말은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 위기를 금융사가 더 많이 해결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 국가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민간 금융사가 최전방에 투입된다는 비판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지주의 호실적은 은행과 증권, 카드 등 자회사들이 각자의 실적 방어전략을 펼친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공은 증시 활성화에 있다. 은행권 실적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으나 증권은 매 분기 역대 최고치 실적을 갈아치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56개 증권사의 올해 1∼3분기 누적 순이익은 4조507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5% 증가했다. '동학개미' 열풍으로 주식거래대금이 크게 늘면서 수탁수수료가 증가한 영향이다. 증권사들의 3분기 누적 수수료 수익은 5조240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101.0%나 급증했다. 증시를 떠받든 동학개미의 당국을 향한 분노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금융당국과 이미 결산 배당을 축소하는 방안을 두고 협의에 들어간 은행권에서도 당국의 압박과 주주가치 훼손, 그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코로나19 사태 창궐부터 현재까지 사태 수습의 최전방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며 당국의 지시대로 움직였지만 이번엔 더 깊은 고심을 요구하는 압박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주 투자에는 고배당 정책과 주주친화정책이 큰 요인이 되는데 이러한 기대를 리스크 방어 논리로 저버린다는 것을 주주들이 이해해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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