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로 얼룩진 정규직 전환…‘재교육’이라도 해야
일탈로 얼룩진 정규직 전환…‘재교육’이라도 해야
  • 최창민 기자
  • 승인 2020.10.13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리한 전환으로 노사 갈등과 노노(勞勞) 갈등을 유발하는 것은 물론, 기존과 다른 업무 배치로 인한 갈등과 근무 태만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이들의 재교육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진숙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현장지원직 배치된 수납원들, 업무 이탈 드러나

올해 5월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민사합의부(재판장 박치봉 지원장)의 판결에 따라 전원 직고용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도로공사가 기존 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고려해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을 추진하려고 하자 수납원들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반발한 지 꼬박 1년 만이다. 이날 판결에 따라 2015년 이후 입사한 수납원들도 도로공사가 직고용하게 됐다. 이로써 총 6500여명의 전환 대상 자중 5100여명은 자회사 정규직 전환에 동의했고 나머지 1400여명은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했다.

문제는 이들이 배치된 ‘현장지원직’이다. 이들은 기존에 근무하던 톨게이트 수납업무가 아닌 현장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도로공사 청사 안팎과 휴게소, 졸음쉼터 등지를 청소하는 업무에 투입됐다. 업무 배치 이전에 실시된 재교육은 단 1달간 진행됐다. 현재 이들은 버스정류장과 졸음쉼터 등의 환경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업무 재배치가 짧은 기간에 이뤄진 결과,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이 도로공사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현장지원직에 배정받은 이들 가운데 전주지사·남원지사·엄정지사 등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근무지 이탈 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할 구역을 이탈해 휴식을 취하다 주민의 민원으로 적발돼 징계를 받은 사례도 나왔다.

■ 비정규직 재교육에는 관심 없는 정부

현재 국내 취업 재교육은 경력단절 여성과 실직자, 중장년층 등을 위주로 구성돼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재교육은 제도적 발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내놓은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도 재교육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직된 한국 노동 시장의 특성상 개인의 인적 자본 개발이나 정부 차원의 재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반강제로 이동하게 돼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단순히 임금만 올려주고 전환시킬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재교육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다”라면서 “정규직 전환과 동시에 직무 전환이 적합하게 이뤄지지 않는 경우, 전환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은 도로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공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1400여명을 현장지원직으로 배치한 것을 두고 “준비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다 보니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정작 도로공사 운영에 필요한 인력 충원 요청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해외 시장 재교육 활발…공공부문 민간위탁 전환만 남아

재교육의 필요성은 이미 전 세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안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인력 대체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세계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정규직 전환의 내홍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지난달 23일 미국, 호주, 캐나다, 중국 등 주요 9개국 800명의 기업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월마트(Walmart)와 JP모건, 에이티앤티(AT&T)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은 이미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동화에 대비할 재교육 프로그램을 구축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지난해 8000억원을 투입해 10만명에 달하는 임직원의 재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체 직원 3명 중 1명꼴이다.

자료=
자료=정책브리핑 홈페이지 갈무리

정규직 전환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공공부문 민간위탁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주최한 ‘공공부문 민간위탁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방안’ 토론회에서 류숙원 지방공기업평가원 선임전문위원은 “현재 공공부문 채용은 회계, 법무 등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조차도 공무원으로 채용된 이후 재교육을 통해 이뤄진다”라며 “업무가 필요해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공석이나 예산이 있어 그에 따른 채용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요자가 필요한 업무와의 연관성보다는 공급자(정부)의 물리적 자원(세금)에 따른 공급이 이뤄진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필요에 따라 수급하는 지금의 체계로는 다가올 공공부문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에도 파열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규직 전환 로드맵에 따르면, 3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은 공공부문 민간위탁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생활 폐기물 수거 ▲소각장·하수처리장 ▲정신 건강센터 운영 ▲방과 후 학교 강사 ▲공공기관 콜센터 ▲수도·전기 검침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정부는 각 위탁기관에 민간위탁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민간위탁 사무의 선정, 재계약 및 위탁계약의 투명성 관리 등을 가이드라인에 따라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여전…노노 갈등 시발점

이날 국감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차별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거지는 노노 갈등의 불씨를 정부가 지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심하다”라면서 “유급 병가 사용 비율을 살펴보면, 정규직의 17.9%가 이를 사용한 데 반해, 비정규직은 4.8%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은 최근 5년간 무급 병가 사용 인원이 5명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료=
자료=국회의사중계시스템 갈무리

이에 대해 김진숙 도로공사 사장은 “편 가르기가 아니고 6개월 미만의 기간제 직원들은 겨울 한철 작업(제설)에 투입된다”면서 “이들이 유급 휴가를 사용할 경우 도덕적 해이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하에 조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