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우려에도…ILO 국제기준에 끼워 맞추려는 정부
경영계 우려에도…ILO 국제기준에 끼워 맞추려는 정부
  • 최창민 기자
  • 승인 2020.09.2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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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1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경총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현대자동차 노조가 11년 만에 임금 동결을 합의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 위기가 만연하고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촉발한 위기감이 고용 안정으로 무게를 싣게 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강경 노조라고 불리던 현대차 노조의 노선 변경이 다른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 관계가 변화를 꾀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만 몰두하고 있어 기업의 입지가 위협받고 노사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5일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간담회를 열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30대 기업 인사·노무 책임자(CHO) 들에게 정부의 핵심협약 비준을 관철하겠다고 밝히면서, 경영계의 협조를 요구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ILO 핵심협약은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98호와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29호 등 3개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이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법안은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규정 삭제 ▲공무원노조 가입 범위 폐지 ▲퇴직교원·퇴직공무원 노조 가입 허용 등이다.

■ '통상리스크' 내세우는 정부

이 장관이 이날 특별히 언급한 것은 ‘통상리스크 해소’다. 통상리스크는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문제다. EU는 우리나라가 ILO 핵심협약 비준 등 국제노동기준을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한-EU FTA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U의 이 같은 주장이 정당한지를 두고 다음 달 초 전문가패널 심리가 열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EU의 FTA 위반 주장이 전문가패널 심리에서 확정된다 해도 당장 FTA가 종료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면서 “이후 추가 조처를 요구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패널은 심리를 진행한 뒤, 45일 이내에 최종 판단 보고서를 제출한다.

정부는 이 같은 위험에서 벗어나 국제무역과 투자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 한편, 국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경영계 난색…노동시장 경직, 기업 부담 커질 것

경영계는 난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권한이 더욱 강해진다는 이유에서다. 대립적인 노사 관계 문화가 더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손 회장은 이날 노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로자와 노조의 권리를 국제 규범에 맞춘다면 당연히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사용자 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들도 반드시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 경직을 유발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해고자나 실업자들은 인사권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과격한 노조 활동을 벌일 수 있다”면서 “비조합원이 노조 임원으로 선임되면 정치적 활동에 치중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 삭제도 경영계로선 골칫거리다. 노조전임자는 단체협약이나 사용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에 종사하지 않고 노조 업무에만 종사하는 이들을 칭한다. 지난 2009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4조 2항에 따라 사측의 급여 지급이 금지됐다. 1997년께 노조법에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도입하면서도 13년간 유예하면서 노사 자율에 맡겨 전임자 수 축소를 유도했지만, 오히려 증가하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경영계와 전문가는 법 개정으로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을 합리화할 경우 기업이 더 많은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줄 법적 의무가 생겨,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인원까지 기업이 경비를 부담해야 하므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경영계는 쟁의행위 시 노조의 사업자 점거를 금지하는 한편, 쟁의 기간 대체 근로를 허용함으로써 사용자의 대항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노조의 부당노동 행위를 신설해 처벌 대상을 노조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쟁의 조정·소송 해마다 증가…ILO 협약 국내법 충돌 우려

고용노동부의 조정·심판사건 통계에 따르면, 쟁의행위와 관련한 조정 건수는 2010년 708건에서 지난해 1291건으로 45%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64.5%를 나타냈던 조정성립률은 해마다 줄어들어 2019년 47.6%로 조사돼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송으로 번지는 경우도 증가세다. 2010년 321건이었던 관련 소송 건수는 지난해 639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는 사용자의 정당한 징계나 통상적인 노무관리, 단체교섭 상황에서조차 노조가 사용자에 대한 압박의 수단으로 부당 노동행위를 이슈화하고 고소·고발을 남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꼬집었다.

자료=통계청

전문가들은 사용자의 권한을 보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국내법의 역할을 하는 조약을 서둘러 비준할 경우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 교수는 지난 23일 열린 경총 토론회에서 “정부의 노동정책이 고용과 성장률 악화의 원인이 된다”라며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부당노동행위 제도가 있는 미국, 일본에는 형사처벌 규정이 없으므로 우리나라도 이에 맞춰 처벌 규정을 삭제하고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신설해 노사가 대등할 수 있도록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데, 비준될 경우 법률이 두 개가 생기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국내법을 먼저 정비하고 도입을 해야 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ILO 협약은 내용이 급진적이고 국내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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