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상’의 부재가 낳은 6조짜리 사모펀드 사태...투자자는 어디로
[기자수첩] ‘상상’의 부재가 낳은 6조짜리 사모펀드 사태...투자자는 어디로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9.10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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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금융당국과 대형 금융사의 브레인들, 그 누구도 이런 형태의 사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지 않은 게 문제다.” 부실자산 투자, 문서 위조로 줄줄이 발생하는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 ‘왜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는가’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가 이같이 답했다.

‘상상’의 부재로 수억, 수천, 수조의 재산을 날린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투자자는 억울하고 판매사는 난감하고, 금융당국은 얼떨떨한 상황이다.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라임자산운용의 1조6700억원 규모 펀드 환매중단으로 촉발된 사모펀드 사태가 1년이 넘도록 잇달아 터진다.

최근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순자산 3600억원 규모의 사모재간접공모펀드인 ‘키움 글로벌얼터너티브펀드’ 환매중단을 판매사들에 통보했다. 이 펀드는 유럽계 자산운용사인 H2O가 운용하는 ‘H2O 멀티본드’와 ‘H2O 알레그로’ 펀드 등을 편입한 재간접형 공모펀드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펀드가 보유한 비유동성 사모채권을 다른 자산과 분리하라는 프랑스 금융감독청(AMF)의 권고를 H2O가 받아들이며 환매가 중단됐다. 해당 펀드 환매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벌써부터 잡음이 흘러나온다. 소식을 동시에 접한 브이아이자산운용은 즉시 투자자에게 소식을 알린 것과 달리 키움운용 측은 임원이 사태를 축소하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보증권에서는 100억원대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7일 교보증권 사모펀드운용본부는 ‘교보증권 로열클래스 글로벌M 전문 사모투자신탁’ 투자자들에게 펀드 환매 중단을 통보했다. 이 펀드는 운용사가 부실 채권 발생시 5영업일 이내 정산채권으로 돌리도록 한 약속을 어겨 결국에는 자산 중 98% 가량이 부실화 됐다. 하지만 환매가 중단될 때까지 교보증권은 이를 알지 못했다.

신한금융투자의 '키웨스트 미국인컴포커스 전문사모투자신탁 제11호' 사모펀드도 환매 연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약 185억원 규모의 이 펀드는 이미 환매가 중단된 교보증권의 ‘교보증권 로얄클래스 글로벌M’과 같은 상품이다. 해당 펀드는 지난 5월 역외운용사로 교체된 바 있으나 신한금투 측이 이를 투자자들에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와 함께 앞서 발생한 옵티머스자산운용, 디스크버리부동산펀드, JB호주부동산펀드, 독일 헤리티리지부동산DLS 등 사모펀드와 이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재간접펀드에서 부실자산 편입으로 환매 연기된 펀드 판매 규모는 5조6000억원을 육박한다. 이 수치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현재 환매중단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판매사들을 상대로 “전액 선보상”을 외치며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투자자들은 운용사의 사기는 판매사와 운용사가 해결할 문제고 우선 투자자들의 유동성 해결을 위해 선지급부터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가 진다’는 사모펀드의 특성을 대입하면 무조건 전액 배상하라는 투자자들의 주장이 억지로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상품이 미리 알았다면 절대 투자하지 않았을 사기와 부실로 점철돼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투자자의 투자성향이 조작되거나 운용사가 문서를 위조해 판매사와 수탁사를 속여 부실채권에 대거 투자됐거나, 환매중단 사실을 은폐하고 수습에 급급했다가 결국에는 사고가 터지는 ‘사기 펀드’에 내 돈을 맡길 투자자는 없다.

판매사들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미리 알았다면 절대로 판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한목소리를 낸다. 운용사를 믿고 판매한 것뿐인데 판매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다수의 운용사들이 이미 공중분해 된 상황에서 선지급 대상 펀드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 자금은 그대로 회사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사모펀드 이슈가 터진 이후 회사 주식이 30% 이상 빠져나갔다. 주주들의 피해도 막심하다. 선지급도 배임과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 이사회 내부에선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의 속 타는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서 더욱 안타깝고 난감하다는 이 판매사 관계자의 토로에 필자도 약간의 동감이 일었다.

다만 일부 당국 관계자들과 판매사들 중에는 ‘이익을 노리고 작정하고 조작한 사기를 어떻게 미리 방지하느냐’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수억, 수천, 수조 단위 피 같은 ‘남의 돈’으로 이자 장사를 하는 금융사들이, 엉뚱한 일로 피해를 보는 투자자가 없도록 자본시장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금융기관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판매사 때리기로 사태 수습에 나선 금융당국과 리스크방어와 투자자보호 갈림길에서 고심중인 판매사, 투자자들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간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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