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주식 사이…본질 간과한 ‘부동산 백지신탁’
부동산과 주식 사이…본질 간과한 ‘부동산 백지신탁’
  • 최창민 기자
  • 승인 2020.08.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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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여권을 중심으로 대두하고 있다. 정책 수립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들에게 실거주하는 집 한 채를 제외한 나머지의 처분을 강제하겠다는 것인데,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과 정책신뢰를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과 주식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주식 백지신탁제의 연장선에서 나온 제도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7일 대표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고위공직자의 본인 및 배우자 등 이해관계자가 보유한 실거주 목적의 1주택을 제외한, 실소유가 아닌 부동산은 60일 이내에 매각하거나 백지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대상자는 공직자윤리법상 재산 공개대상자인 국무위원,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원, 1급 공무원, 교육감 및 국토교통부 소속 공무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등이다.

실소유는 주택의 경우 본인이 직접 거주하는 1주택으로 한정한다. 건물, 토지 등 주택을 제외한 부동산의 실소유 여부도 심사한다. 이를 위해 인사혁신처에 부동산백지신탁 관리위원회를 설립한다. 매각대상자는 부동산을 실소유의 목적으로 보유하고자 할 때는 30일 내 실소유 여부 심사를 청구해야 한다.

이 같은 백지신탁제를 찬성하는 측은 정책의 신뢰성을 내세운다. 부동산 정책을 세우는 이해관계자들이 정책을 이용해 부당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논리다. 법안을 발의한 신정훈 의원은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정보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고위공직자의 실거주, 실소유 외 부동산 처분을 의무화한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더할 뿐 아니라 청문회 때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투기 논란을 없애 인재풀을 보호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부동산 백지신탁제 도입을 강조한다. 이 지사는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주식 백지신탁제와 연결해 “고위공직자는 권한과 직무로 주가에 영향을 주므로 고위공직자가 되려면 주식을 처분하거나 처분을 위탁하는 주식백지신탁제가 시행 중이다”라며 “고위공직자는 주식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더 많이 미치므로 주식백지신탁을 도입한 마당에 부동산 백지신탁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또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역시 지난 3일 공직자윤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심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의원, 장·차관, 광역자치단체장 등과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거주 목적 외 주택을 60일 내에 매각 또는 신탁처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심 대표는 “주식 보유에 대해서는 매각과 신탁 등을 이야기하지만 주택에 대해서는 사유재산 보호를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주식 백지신탁제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기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기본권 차원에서 부동산과 주식은 성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주식 백지신탁제가 국회의원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부동산과 주식의 차이점 세 가지를 들었다. 헌재는 먼저 부동산은 주식에 비해 그 가격이 비교적 고액이고 용도 또한 다양한 관계로 수탁자가 시장에서 환가하기가 쉽지 않아 강제처분을 전제로 하는 백지신탁의 대상으로 부적절하며,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부동산은 백지신탁의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어, 부동산은 주식에 비해 주거 또는 영업 등 개인의 생존에 더 직접적인 형태로 연관돼 있어, 그 처분을 일률적으로 강제할 경우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더 클 수 있고 변동성 측면에서도 부동산보다는 주식이 훨씬 더 정책의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해 부정행위의 소지가 높고 따라서 규제의 필요성도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의 발언이 주식과 부동산의 차이를 간과한 채 둘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헌재는 부동산은 개인의 영역과 밀접하고 주식보다 시장의 변동성이 낮기 때문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백지신탁을 일괄적으로 적용할 경우, 기본권 침해 문제가 주식 백지신탁 적용 당시보다 더욱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식과 부동산은 차이가 커 구체적으로 반영하긴 쉽지 않다”며 “법안에 오른 대상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적용되는 법안을 쉽게 통과시킬지도 미지수”라며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부연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부동산 등으로 월등히 증가해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 짓기에도 무리가 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올해 3월 발표한 2020년 정기 재산변동 사항을 보면, 정부 고위공직자 1865명의 재산은 평균 13억3000만원으로 종전 신고분에 비해 8600만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변동 요인별로는 부동산 공시가격 상승 등 가액 변동에 따라 불어난 재산이 평균 4400만원으로 51.2%를 차지했고, 급여 저축이나 상속 등으로 인한 순자산 증가 폭은 평균 4200만원으로 48.8%로 나타났다. 고위공직자들이 부동산을 통해 재산을 증식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그 차이가 다소 미미하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처벌 수위가 달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식 백지신탁제의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자신이 보유하는 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신정훈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부동산의 매각 또는 백지신탁을 거부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신탁한 부동산의 관리·운용·처분에 관한 정보 공개를 요청하거나 실소유 여부 심사 청구 의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했다. 헌재가 부동산보다는 주식이 이해관계가 더 얽혀있다고 본 것과 배치되는 형태다. 숭실대 법대 교수를 역임한 오시영 변호사는 “이를 평등의 원리에 입각해 바라볼 경우, 유동자산이나 부동자산은 같은 자산이고 행사하는 주체도 고위공직자로 같다고 볼 수 있다”며 “따라서 평등권에 어긋난다고 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시영 변호사는 단순히 부동산 백지신탁 시행보다는 백지신탁의 계약 조건과 불로소득이 귀속되지 않도록 할 방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 변호사는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사실상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며 “실상 계약을 통해 수익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할 수 있다. 세부적인 계약 사항까지 법으로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고위공직에서 물러나면 수익이 돌아간다는 점에서도 사후 방안까지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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