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일단은 환영…임시 거주 시설 우려도
이웃과 교류할 시설, 병원 등 필요 목소리
[화이트페이퍼=최창민 기자] “노인정과 같은 복지관, 종합병원 정도 규모가 되는 병원은 꼭 들어서야 해요. 그렇게 되면 적어도 고독사하는 노인들이 나오진 않을 거잖아요.”
지난 21일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문수진(67)씨는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연중 가장 무덥다는 절기인 ‘대서’ 하루 전날인 이날 쪽방촌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일대는 기온이 31도를 가리켰다. 이날 쪽방촌 옆에 위치한 한 교회 앞에는 후원 물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늘어선 줄의 끝에 쪽방촌 입구가 보였다. 바로 건너편에 타임스퀘어 영등포점이 우뚝 솟아있어, 이곳의 집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연출했다.
양쪽에 길게 늘어진 쪽방들 사이로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이곳 골목에 주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기도 했지만, 더위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방문 곳곳에는 셋방이 있다는 문구와 함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한 손 소독제가 걸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은 집들이 도미노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어 간격이 1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비좁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이곳에는 36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인 14㎡에도 못 미치는 공간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지난 2012년부터 4년 간 진행된 리모델링으로 그나마 사정은 나아졌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60대 A 씨는 “리모델링 당시 슬레이트 지붕 위에 새로 덮개를 씌워 비가 새지는 않는다”며 “슬레이트 지붕만 있었을 때는 열기가 식지 않아 찜통이 따로 없었는데 이후로는 비도 새지 않고 훨씬 낫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이곳 쪽방촌 일대를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고 영구임대주택 370호, 행복주택 220호, 분양주택 600호 등 총 1200호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초 계획 발표 이후 6개월 만이다. 국토부는 또 주민의 안정적인 재정착을 위해 지정 지구 내 우측에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 이주단지를 만들어 사업 기간 중 주민들이 임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40년 넘게 거주 중인 백발의 B씨는 국토부의 주거상업복지타운 계획에 일단은 거주민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운을 뗐다. B씨는 “지난 리모델링 당시에는 2년 동안 주민들이 두 달 간격으로 돌아가며 컨테이너 생활을 했었다”라며 “이번에도 그 정도 기간은 걸리지 않을까 한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임시 거주를 위한 건물 리모델링과 주택 건설까지 진행하려면 기간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씨는 또 “여기 등록된 주민이 350여명인데 아마 절반 정도만 입주하고 나머지는 이사비만 챙겨 다른 곳으로 옮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30년 이상 오래 거주한 주민들 외에도 거주 신고만 해놓고 물품이나 생계 급여만 타가는 사람도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마 일부는 이사비만 챙기고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복지시설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곳에서 30여년 동안 거주했다는 문수진 씨는 쓰고 있는 챙이 큰 밀짚모자를 들치면서 연신 땀을 닦았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노인정과 병원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씨는 “노인정 같은 곳이 생기면 노인들이 소일거리를 통해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이웃들의 건강도 확인할 수 있지 않겠냐”며 “지금도 이렇게 모이기는 하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다. 그러니 생사를 알 길이 없고 죽은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발견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곳에서 거주하는 주민의 대부분은 독거노인으로,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생활한다. 이 때문에 이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상황에 빠질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달 1일 이곳 거주민이 숨진 지 3일 뒤에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다.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는 이곳에서 20년 동안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씨는 이외에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편의를 위해 종합병원 규모의 병원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영구임대주택단지에 쪽방 주민들을 위한 취업, 자활 등을 돕는 종합복지센터를 설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진료를 지원하는 돌봄 시설도 만든다.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A 씨는 영등포구청에 대해 “구청장과 직원들이 자주 방문하지만 우리들 이야기는 듣지 않고 (광야)교회하고만 소통한다”며 “그곳을 통해 보급품이나 후원이 진행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주민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옳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주민들과도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는 향후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이곳 주민들과 1:1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주 대책을 마련하고 이 같은 주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쪽방 주민 의견수렴 등을 거쳐 임시이주 및 재정착, 복지 체계 등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