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카드사도 기업’... 긴급재난지원금 마케팅 왜 안 되나요?
[기자수첩] ‘카드사도 기업’... 긴급재난지원금 마케팅 왜 안 되나요?
  • 장하은 기자
  • 승인 2020.05.11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돈 벌면 욕먹는 '기업' 카드사, 어쩌다 동네북

[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첫날을 사흘 앞둔 카드사 내부는 여느 때보다 분주한 모습이었다. 시스템 점검 등 대규모 신청자들이 몰릴 것을 대비하는 막바지 준비는 차치하더라도 당초 준비해온 마케팅을 그대로 진행해야 할지 아니면 취소를 해야 할지 고심에 빠진 것.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업무에 신용카드사들이 참여하는 것은 세계에 유례없는 민관 협력 사례”라며 “정부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지원금 신청을 유치하기 위한 지나친 마케팅 활동은 자세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이런 권고에는 말 그대로 권유하는 것으로 강제성이나 구속력은 없다. 다만, 상위기관의 권고사항에 구속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BC카드·NH농협카드는 추첨을 통해 자사카드를 이용하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삼성카드의 경우엔 고객들을 대상으로 커피 쿠폰 또는 편의점 5000원 모바일 쿠폰 제공 이벤트를 여는 문자까지 발송했으나 취소했다. 단 우리카드만이 기존에 고객에게 공지한 내용대로 커피 쿠폰 증정 이벤트를 진행한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고객에게 한 약속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것은 신뢰를 잃는 길이라 결정해 공지한 대로 이벤트를 진행하게 됐다”면서도 “이밖에 준비한 이벤트는 없다”고 강조했다. 기존 결정대로 진행하면서도 당국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카드사는 그동안 이슈의 중심에 설 때마다 금융당국 제재를 받는가하면 정부의 비난 대상이, 소비자들에게는 뭇매를 맞는 동네북이 됐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소비자들도 카드사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의 제재로 기대했던 추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소비자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 한 네티즌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며 관치행정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시민 혜택까지 정부가 막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재난지원금 사용을 촉진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일부 마케팅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과 사용에 대한 정보 제공 등 활성화 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마케팅으로 묶어 규제한 것은 아쉬운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은 정부에서 지급하는 긴급재난금 지원을 위해 ▲전산시스템 개발 ▲서버 중축 ▲콜센터 재정비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한 카드사당 수억원씩의 비용을 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모두 카드사가 감당한다. 재난금 지원 절차 또한 카드사가 고객과 가맹점에 우선 지급한 후 정부에 돌려받는 구조로 돼 있는데 그 사이 발생하는 자금 조달 비용 및 이자비용 또한 카드사 몫이다. 아울러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용카드로 받아 사용하는 경우 이용금액은 고객의 카드 전월실적에 포함된다. 또 청구할인과 현장할인, 포인트 적립 등 기존 카드사가 제공하던 혜택도 그대로 적용한다.

이번에 정부가 공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총 14조원에 이르고, 이 가운데 10조원 이상이 신용·체크카드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난지원금으로 카드사만 배불린다고 지적한다. 3억원 미만의 소상공인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최소 기준이되는 0.8%를 적용하면 총 800억원의 카드수수료가 발생한다는 것. 하지만 카드사가 프로세싱 등 순수 원가로만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기준으로만 잡아도 1.6%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사용되는 곳은 대부분 이들 가맹점들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서버 중축과 콜센터 재정비 등에 쓰이는 비용을 제외한 원가로만 따져도 마이너스인 셈이다.

그럼에도 카드사들이 관련 마케팅을 준비한 이유는 기존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신규고객을 유치하기 위함이다. 애초에 이번 지원으로 거대 금전이익을 거둬들이는 것에 방점을 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여신업계 한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원으로 카드사들은 들인 비용이라도 건지면 다행인 실정”이라며 “금융당국의 이번 권고는 말이 권고지 과도한 규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카드사들이 그동안 들인 비용과 앞으로 발생할 비용을 돌려준다면 몰라도 카드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라고 덧붙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금융당국의 취지는 짐작이 가지만 지출이 발생한 카드사들의 입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시장 논리로 바라보면, 긴급재난지원금이 카드사를 통해 지원될 때 고객 유치나 실적과 관련된 경쟁이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카드사들은 자연스럽게 자율성을 부여해주기를 원할 것이란 견해다. 이는 시장이 원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황 박사는 “금융당국의 시장에 대한 개입을 어디까지 하는 게 합리적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나올 것”이라며 “가급적이면 시장의 경쟁이 어느 정도는 허용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성이다”라고 부연했다.

다만 박사는 “정부의 지원금인지라 시장의 경쟁 논리로만 가져가는 것이 합리적이냐는 반론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만 시스템과 관련된 비용들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고, 카드사들이 이런 부분을 실적으로 인식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견해들이 잘못됐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장의 의견들이 정책적 스탠스(입장·자세)에 반영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