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죽는 법 일깨워주는 수목장의 비명
잘 죽는 법 일깨워주는 수목장의 비명
  • 북데일리
  • 승인 2006.05.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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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째 이름 없이 살던 참나무 한 그루/오늘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 되셨다/임학계 거목 김장수 씨 화장 유골이/살아 아끼시던 이 참나무 아래 묻혔으니/나무와 함께 살다 나무 곁으로 가셨으니/....../나도 죽어 자작, 나무 되어/별을 먹은 나무 되고 싶다//불힘 좋은 몸들,/나무들의 향기가 낯익다”(정끝별 ‘또 하나의 나무’중에서)

지난 2004년 9월 김장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장례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수목장으로 치러졌다.

‘임학계의 거목’을 모신 굴참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간단한 표식 외에는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이후 수목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어났다.

지난달 11일에는 목포의 눈물’의 가수 고 이난영 선생의 유해가 목포시 삼학도 ‘난영공원’ 안 ‘난영 나무’ 아래 수목장으로 안장돼 타계 41년 만에 고향 땅에 한 그루 나무가 되었다.

스위스인 윌리 자우터는 영국인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죽으면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나를 스위스에 묻어다오”라고 한 친구의 부탁을 받고 고민하다 친구의 유골을 나무 아래에 묻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1993년 현대 수목장을 창안한 계기가 됐다.

‘나무 할아버지’ 김장수 교수의 제자인 변우혁 고려대 교수가 쓴 <에코-다잉의 세계 수목장>(도솔.2006)은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웰다잉’(well-dying)의 철학을 전해주는 인생경영서이다.

수목장은 매장이나 납골로 인한 환경 피해가 없으며 아름드리나무를 키울 수 있기에 환경 개선 효과까지 있어 장묘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국내에 도입할 수목장의 주류로 자연 그대로의 산림에서 기존에 식재된 교목을 활용하는 ‘산림형 수목장’을 추천한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해바라기 소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의 비명(碑銘)이 가득한 숲에서 우짖는 새는 ‘잘 죽는 법’도 미리미리 생각해두라고 쉴 새 없이 푸른 하늘을 쏘고 있다.

(사진=노고지리) [북데일리 문수인 기자] beihansha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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