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장하은기자] “15년 가까이 근무하며 이렇게까지 고강도 규제를 시행하는 전례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되면 은행들은 하던 것만 하게 돼 발전이 아니라 퇴보 할 수 밖에 없다.”
최근 기자가 만났던 한 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몇 년 간 은행에 대해 금리 산정부터 대출까지 강력한 규제를 가하며 압박해왔다. 명목(名目)은 다양하다.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특히 같은 명목을 두고 펼치는 정책들이 일관되지 못하고 다소 변덕스러운 건 더 문제다.
최근 들어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신용대출을 확대하라고 등 떠밀고 있다. 지난해 내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생활자금 용도의 신용대출까지 막던 행보에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이다. 정책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고무줄 정책’에 은행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지난 3~6일 금융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기업 금융지원 집행 상황 점검을 위해 신한은행을 포함해 총 26개 금융기관 지점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이들 금융기관 중 2곳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금융위는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신한은행을 ‘완화된 여신심사 지침’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대출을 확대한 모범사례로 뽑았다.
신한은행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상공인 대출 등과 관련해 신용등급을 '3단계' 상향조정한 수준으로 금리와 한도를 결정하고, 4월내 만기가 오는 대출의 경우 추가심사 없이 만기를 6개월 연장해주고 있다. 또 여신심사 기간도 단축했다. 이밖에 시스템을 갖춘 일부 은행은 기업대출에 대해서도 비대면 만기연장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같은 지원 방안이 다른 금융회사로 확산할 수 있도록 신한은행 사례를 적극 전파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정부노선에 따라 대출 확인절차를 강화하는 등 생활자금으로 받는 신용대출에까지 가했던 규제와는 상반되는 행보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신용대출이 주택구입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확인절차를 강화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한 금융위는 규제지역 내 시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사려는 소비자가 대출을 받을 때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대출자의 갚을 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해주라는 의미다. 문제는 DSR은 전 금융권에서 빌린 모든 돈이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미 주택대출을 받은 사람은 생활자금으로 쓰이는 신용대출도 받기 힘들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이렇듯 촘촘하게 죄던 대출을 코로나19가 사태가 터지자 신용대출을 대폭 늘리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실상 못하는 거다. 당국에서 내려지는 압박을 무시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흔치 않다.
여기서 우려되는 부분은 코로나19 사태로 확대된 대출의 연체율과 건전성 관리는 오롯이 은행의 몫이라는 데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여신 심사기간 단축과 추가 심사 없이 만기를 연장하는 등 여신심사 기준을 완화해 대출을 대폭 확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는 ‘비상’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각국 유수 기관들에선 잇따라 한국 경제 성장률을 내려 잡고 있다. 그만큼 국민생활도 팍팍해질 것이고 대출자들이 돈을 갚을 여력도 줄어든다는 말이다.
금융당국은 정책기관이 아닌 은행들에 규제와 압박만 가할 게 아니라 발전 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로 확대된 대출로 은행에 어려움이 발생할 시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보완책도 마련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