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찬 기자의 영화 속 보험] ‘봉오동 전투’와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
[박재찬 기자의 영화 속 보험] ‘봉오동 전투’와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
  • 박재찬 기자
  • 승인 2019.08.1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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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화재, ‘국내 자금 일본 유출 막고, 국내 경제 부흥시키는데 의미’
좋은 배우들은 열심히 달린 ‘긴장감 없는 전쟁영화’
영화 ‘봉오동 전투’는 목숨을 담보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까지 달려 일본군을 유인한 해철(유해진), 장하(류준열), 병구(조우진)과 독립군들의 이야기다. (사진=영화 '봉오동전투' 포스터)

영화 ‘봉오동 전투’는 목숨을 담보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까지 달려 일본군을 유인한 해철(유해진), 장하(류준열), 병구(조우진)과 독립군들의 이야기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1920년 일본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경추격대가 독립군 토벌 작전을 펼치며 시작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는 독립군들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그리고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은 큰 승리를 거둔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사 메리츠화재의 뿌리인 조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이사 조선화재)의 설립 논의는 1919년 중반 무르익는다. 하지만 조선화재의 설립준비는 일본의 경제불황으로 지연된다.

조선화재는 1921년 12월 조선총독부에 회사 설립 허가 신청을 하고, 1922년 7월에는 설립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다. 1922년 9월 창립총회를 열고, 같은해 10월 1일 지금의 을지로 1가에서 업무를 개시한다.

1920년대는 일본의 국내 자금의 일본 유출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다. 조선화재의 설립은 국내외에서 받아들인 보험료를 될 수 있는 한 일본으로 유출시키지 않고 국내에 투자 내지는 예치해 국내 경제를 부흥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해방 이후 조선화재는 1950년 동양화재해상보험으로 사명을 바꿨다. 동양화재는 1956년 보험업계 최초로 대한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해 기업을 공개했고, 1967년에는 업계 최초로 연간실적 100억원을 돌파했다. 이어 1983년에는 자동차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동양화재는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분리했고, 같은 해 10월 지금의 ‘메리츠화재’로 사명을 변경했다.

영화 ‘봉오동전투’는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좋은 배우들이 영화를 잘 이끌었고, 박지환, 박희순, 최민식 등의 감초 조연들을 보는 재미가 크다. (사진=영화 '봉오동전투')

영화 ‘봉오동전투’는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좋은 배우들이 영화를 잘 이끌었고, 박지환, 박희순, 최민식 등의 감초 조연들을 보는 재미가 크다.

하지만 전쟁영화 ‘봉호동전투’의 연출은 형편없다. 특히 영화 ‘구타유발자’, ‘세븐데이즈’, ‘용의자’, ‘살인자의 기억법’ 등 그 동안 좋은 연출력을 보여준 원신연 감독의 영화라 아쉬움이 더 크다.

배우들이 계곡과 능선, 절벽을 쉴새없이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긴장감은 거의 없다. 영화 내내 긴장감이 없다보니 영화의 절정도 밋밋하다. 영화의 대부분이 산에서 벌어지는 총격신과 격투신이지만 전투에 대한 고민과 이해도 거의 없는 식상한 전투의 연속이다.

단, 영화 ‘봉오동 전투’는 무엇보다 애국주의를 전면에 앞세웠다. 광복절이 있는 8월, 뜨거운 애국심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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