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아래 딸을 생각하는 시인
목련꽃 그늘아래 딸을 생각하는 시인
  • 북데일리
  • 승인 2006.04.0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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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의 신이 아내의 목숨까지 거둬들였음을 알고는 가엾은 두 여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나게 했어요. 공주의 무덤에서는 생전에 공주의 모습과 같이 희고 아름다운 백목련(白木蓮)이 피어났고 북쪽 바다의 신의 아내가 묻힌 무덤에서는 붉은 색의 자목련(紫木蓮)이 피어났습니다.”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목련꽃 전설은 왕의 외동딸이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하였으나 유부신(有婦神)임을 알고 죽음을 택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목련 같은 딸을 둔 복효근 시인이 마당 구석에 핀 <목련꽃 브라자>(천년의 시작.2005)를 쓰다듬으며 봄꽃을 기다리고 있다.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꽃을 맺지 아니하거든/냉장고에 하루쯤 넣었다가 내놓으라고 합니다/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보지 않은 푸나무들은/제 피워낼 꽃의 형상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차고 시린 눈이 꽃처럼 내리는 것은/바로 그 까닭입니다/잠든 푸나무위에 내려앉아/꽃의 기억들을 일깨워줍니다”(‘눈이 내리는 까닭’)

꽃피는 춘삼월인데 영동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봄꽃은 움츠리고 있습니다. 한 사나흘 푹 해져야 꽃눈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바람기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일 텐데 말입니다.

“풀잎 하나의 속내까지가 궁금하여/저 구름 한자락의 일에도 참견을 하며/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날들/들쑤시는 이 바람기!//......//한 사흘 머물러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면/내변산 골짜기 저 꽃의 형상으로나 나토고 싶다”(‘변산 바람꽃’)

이윽고 서해의 섬에 자생한다는 변산바람꽃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꽃 소식을 전해옵니다. 산 넘고 강을 건너오는데 매화가 같이 가자고 튀밥 같은 눈망울을 툭툭 붉히는 군요.

“그러니까 이 매화 한송이는/저 산 하나와 그 무게가 같고/그 향기는 저 강 깊이와 같은 것이어서/그냥 매화가 피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어머, 산이 하나 피었네!/강 한 송이가 피었구나! 할 일이다”(‘매화 讚’)

변산바람꽃이 매화를 깨워 함께 봄의 길목으로 나가는 모습이 마치 한 쌍의 잠자리가 하늘에 금침을 깔고 잠자리에 든 풍경입니다.

“혼자서 날아온 먼 길과 다시 혼자서 가야 할 먼 길 사이/단 한번뿐인 이 시간/혼자서 날 때와 둘의 날개로 날 때/그 삶의 사랑의 무게 차이를 가늠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네 날개 힘들여 함께 균형 잡아 파닥이며/한 방향과 한 목적지를 향하여 날아가는 그것이,/참 둔하고 아둔한 그것이 삶과 사랑 아니겠느냐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잠자리에 대한 단상’)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잠자리가 연록의 봄 숲에 살포시 내려앉았네요.

“세상에 지고도 돌아와 오히려 당당하게/누워 아늑할 수 있는 그늘이/이렇게 예비 되어 있었나니/....../또한 그대와 나의 마지막 촉루를/가려줄 빛깔이 있다면/그리고 다시 이 지상에 돌아올 때/두르고 와야 할 빛깔이 있다면/저 바로 저 빛깔은 아니겠는가”(‘봄 숲’)

한 쌍의 잠자리가 시인의 집 마당 빨랫줄에 앉아 막 피어난 목련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목련꽃 목련꽃/예쁘단대도/시방/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목련송이만할까/고 가시내/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내 다 알지/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눈부신/하냥 눈부신/저......”(‘목련꽃 브라자’)

눈꽃처럼 환한 딸을 보고 있으니 촛농이 떨어진 듯 가슴 한 켠이 부풀어 오릅니다. 봉선화처럼 애지중지 키워 한 떨기 목련으로 성큼 자란 딸은 세월이 흐르면 오동나무 한그루에 멀리 떠나보내야 합니다. 비 그친 뒤 잠깐 피었다 바람 불면 그새 지고 마는 목련꽃의 봄이 못내 아쉬운 계절입니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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