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목련꽃 전설은 왕의 외동딸이 북쪽 바다의 신을 사랑하였으나 유부신(有婦神)임을 알고 죽음을 택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목련 같은 딸을 둔 복효근 시인이 마당 구석에 핀 <목련꽃 브라자>(천년의 시작.2005)를 쓰다듬으며 봄꽃을 기다리고 있다.
“실내에서 기르던 제비꽃이/꽃을 맺지 아니하거든/냉장고에 하루쯤 넣었다가 내놓으라고 합니다/한겨울 추위에 꽁꽁 얼어보지 않은 푸나무들은/제 피워낼 꽃의 형상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차고 시린 눈이 꽃처럼 내리는 것은/바로 그 까닭입니다/잠든 푸나무위에 내려앉아/꽃의 기억들을 일깨워줍니다”(‘눈이 내리는 까닭’)
꽃피는 춘삼월인데 영동에서는 폭설이 내리고 봄꽃은 움츠리고 있습니다. 한 사나흘 푹 해져야 꽃눈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바람기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일 텐데 말입니다.
“풀잎 하나의 속내까지가 궁금하여/저 구름 한자락의 일에도 참견을 하며/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날들/들쑤시는 이 바람기!//......//한 사흘 머물러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면/내변산 골짜기 저 꽃의 형상으로나 나토고 싶다”(‘변산 바람꽃’)
이윽고 서해의 섬에 자생한다는 변산바람꽃이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꽃 소식을 전해옵니다. 산 넘고 강을 건너오는데 매화가 같이 가자고 튀밥 같은 눈망울을 툭툭 붉히는 군요.
“그러니까 이 매화 한송이는/저 산 하나와 그 무게가 같고/그 향기는 저 강 깊이와 같은 것이어서/그냥 매화가 피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어머, 산이 하나 피었네!/강 한 송이가 피었구나! 할 일이다”(‘매화 讚’)
변산바람꽃이 매화를 깨워 함께 봄의 길목으로 나가는 모습이 마치 한 쌍의 잠자리가 하늘에 금침을 깔고 잠자리에 든 풍경입니다.
“혼자서 날아온 먼 길과 다시 혼자서 가야 할 먼 길 사이/단 한번뿐인 이 시간/혼자서 날 때와 둘의 날개로 날 때/그 삶의 사랑의 무게 차이를 가늠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네 날개 힘들여 함께 균형 잡아 파닥이며/한 방향과 한 목적지를 향하여 날아가는 그것이,/참 둔하고 아둔한 그것이 삶과 사랑 아니겠느냐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잠자리에 대한 단상’)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사랑의 줄타기를 하는 잠자리가 연록의 봄 숲에 살포시 내려앉았네요.
“세상에 지고도 돌아와 오히려 당당하게/누워 아늑할 수 있는 그늘이/이렇게 예비 되어 있었나니/....../또한 그대와 나의 마지막 촉루를/가려줄 빛깔이 있다면/그리고 다시 이 지상에 돌아올 때/두르고 와야 할 빛깔이 있다면/저 바로 저 빛깔은 아니겠는가”(‘봄 숲’)
한 쌍의 잠자리가 시인의 집 마당 빨랫줄에 앉아 막 피어난 목련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목련꽃 목련꽃/예쁘단대도/시방/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목련송이만할까/고 가시내/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내 다 알지/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눈부신/하냥 눈부신/저......”(‘목련꽃 브라자’)
눈꽃처럼 환한 딸을 보고 있으니 촛농이 떨어진 듯 가슴 한 켠이 부풀어 오릅니다. 봉선화처럼 애지중지 키워 한 떨기 목련으로 성큼 자란 딸은 세월이 흐르면 오동나무 한그루에 멀리 떠나보내야 합니다. 비 그친 뒤 잠깐 피었다 바람 불면 그새 지고 마는 목련꽃의 봄이 못내 아쉬운 계절입니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