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저자 감꽃 먹고 태어나다
전태일 평전 저자 감꽃 먹고 태어나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2.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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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개조한` 청계천은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갈 곳 없던 서울 시민들은 새로운 관광지의 탄생에 밤낮없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러나 1970년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그 화려함 속 어디에도 없었다. 유일한 위로는 2005년 9월 세워진 전태일 열사의 반신상(半身像)과 11월 청계천 오간수교와 나래교 사이에 만들어진 ‘전태일 거리’다. 전태일 열사 35주기를 기념으로 조성된 버들다리(전태일 거리) 바닥에는 전직 대통령들과 시민 1만5000여명이 참여한 4000개의 추모동판이 새겨졌다.

전태일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단 한권의 책 <전태일 평전>(돌배게. 2001)은 지금 세운 동상과 거리에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전태일 평전>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는 지표가 됐고, 현사회와 격동의 한국사, 그리고 전태일을 잇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했다.

<전태일 평전>을 집필한 조영래(1947~1990)는 생전에 작가보다는 인권변호사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대학 1년 후배인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가 5년여의 준비 끝에 발표한 <조영래 평전>(강. 2006)은 그의 삶을 전면에서 다룬 최초의 책이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 책이다.

평전을 집필한 안 교수는 "이 작업은 당초부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과중한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항상 가슴이 답답했다"며 "조영래씨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지만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열등감이 집필의 진도를 늦추었고 그저 덮어두고 싶었던 아픈 기억을 애써 되살려야 하는 부담도 져야만 했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때 읽어서는 안될 ‘금서’ 로 까지 지정됐던 <전태일 평전>에 담겨진 전태일과 저자 조영래의 삶을 한권에 엮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은 알려지지 않았던 조영래의 어린 시절부터 전태일과 함께 했던 10년 등 다양한 이면들을 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조영래의 아버지 조면제 선생은 경북 청송 태생으로 조상은 여러 대에 걸쳐 청송군 안덕면 명당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조리의 후손 함안 조씨라는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가문의 아들이었다. 해방과 전쟁 후 대대적인 이농을 겪으며 아내와 딸 둘을 거느린 젊은 가장 조민제씨는 고향인 청송을 떠나 1942년 인근 대도시인 대구로 거주지를 옮겼다.

책은 조영래씨가 ‘감꽃 먹고 낳은 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비화를 소개한다. 그의 가족은 늦봄과 초여름에는 감꽃을 주워 먹었고 설익은 풋감의 떫은 맛을 그대로 삼키거나 소금물에 절여 익혀 먹는 등 감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가을이면 홍시나 곶감을 만들어 긴 겨울 동안 빈객 접대와 간식으로 삼을 정도로 모든 가족들을 감을 자주 먹었고 어머니 이남필 여사의 첫 아들 조영래씨에게는 ‘감꽃 먹고 낳은 아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저자는 조영래씨의 어린시절부터 술을 못하면서도 끝까지 술자리를 지키던 습관, 낙서벽, 엄청난 집중력등 다양한 면모를 기록했다.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청년 법률가 조영래씨를 가까운 곳에서 바라봤던 후배이자 동료였기에 집필이 가능했던 부분이다.

4.19와 5.16, 한일회담과 6.3 학생운동, 사카린 밀수 사건과 학생운동 등 격랑의 현대사 또한 정리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평전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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