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지식] 입사지원서 ‘기혼’ ‘미혼’ 표기의 문제점
[책속의 지식] 입사지원서 ‘기혼’ ‘미혼’ 표기의 문제점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9.01.16 1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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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 때로는 차별과 비민주적 표현들이 섞여 있다. 또한 언어는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담기기도 한다. 그중 ‘기혼’과 ‘미혼’은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담긴 언어다.

예컨대 입사지원서에 결혼 여부를 적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 결혼 경험에 대해 묻는 것인지, 현재 결혼 상태 여부를 묻는 것인지 헷갈린다. 양식이 얻고자 하는 답이 어느 쪽이든 세상 사람들을 ‘이미 결혼한 사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 두 가지 범주로 나눈다는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이혼했거나, 사별했거나, 혹은 미혼이지만 싱글 맘이거나 싱글 대디라면 무엇이라 적어야 할지 고민스러워진다. 이들은 어느 쪽에 체크를 해야 할까.

<언어의 줄다리기>(21세기북스.2018)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가 담겼다. 두 범주로 사람을 나누는 세계에서는 ‘결혼을 이미 한 사람’과 ‘아직 하지 못한 사람’만 존재한다. 두 범주만을 설정해 결혼을 이미 한 사람은 기혼으로 불리며 현재에도 반드시 그 결혼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는다. 반대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미혼으로 불리며 미혼의 상태는 기혼의 상태로 꼭 변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받는다.

저자는 기혼과 미혼의 표현에 이처럼 결혼에 대한 관습적인 세계관이 담겼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는 영구한 것이 아니다. 미혼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퇴색되고 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 통계 중 결혼선호율 통계를 보면 1998년을 시작으로 최근 2016년까지 남녀 결혼선호율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였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형성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혼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불편한 만큼 기혼에 담긴 이데올로기의 불편함도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이혼한 사람은 기혼인가 미혼인가하는 의문점도 결혼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급격히 힘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결혼 여부로 밝혀야 한다니 “언어가 우리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책은 청년과 젊은이는 과연 누구인지, 쓰레기 분리수거에 담긴 관념적 차이가 무엇인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대표적인 언어가 ‘대통령’인 이유가 무엇인지 언어의 태생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이를 통해 언어에 담긴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실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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