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 책] 몸이 기억하는 사회적 불평등
[추천! 이 책] 몸이 기억하는 사회적 불평등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9.01.15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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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남녀차별, 빈부격차 등의 불평등 문제는 우리 몸에도 기록된다. 가난은 뇌를 변화시켰고,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은 의학지식까지도 왜곡시켰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승섭 교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동아시아.2018)은 전작만큼 날카롭고 흥미롭다. 전작이 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 범주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면, 신작은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에 작동한 역사적 맥락을 살피고, 지식의 합리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의학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배제된 채 남성의 몸만 표준으로 삼아 생긴 문제를 지적한 대목은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사람이 가장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실 적정 온도는 섭씨 21도로 알려졌다. 대사율, 피부와 조직 두께 등을 고려한 결과다. 하지만, 정말 모두에게 적정한 온도일까. 이 기준은 1960년대 측정되었으며 몸무게 70kg 40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성별 평균 대사율이 다른 만큼 체내 열 생산에도 차이가 있다. 여성 사무직 노동자에게 가장 좋은 실내 온도는 평균 23.2~26.1도 사이다.

의학 지식 생산 과정에 배제된 여성의 몸과 그 지식을 만들어낸 사회의 편견이 약물에 적용되면 어떨까.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 처방용량 경우를 보자. 한 연구에서 성별에 따른 상이한 결과가 드러났다. 10mg 졸피뎀을 먹고 8시간 수면을 취한 사람들의 혈액을 검사한 결과, 15% 여성에게는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약이 남아 있었다. 반면 남성은 3% 정도에 그쳤다. 이에 2013년 미국 식품의약청은 졸피뎀 처방 용량을 10mg에서 5mg으로 줄이라 권고했다. 수면제의 효과가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여성의 몸은 과다한 약을 먹은 셈이다. 약물 처방의 예가 어디 졸피뎀 뿐일까.

그런가 하면 우리 몸에는 불평등이 기록되기도 한다. 가난이 뇌를 변화시켜 학습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은 가난의 문제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 배경을 가진 영유아 77명의 대뇌 회백질 면적을 조사했다. 이 기관은 정보 처리와 의사 결정을 담당하며 학습 능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태어났을 때는 차이가 거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이가 명확해졌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부모를 둔 영유아의 대뇌 회백질 크기가 더 컸다. 이뿐만 아니라 학습능력에 중요한 해마도 크기도 줄었다. 고용불안, 왕따, 성희롱과 같은 사회적 폭력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해 해마의 세포를 변형시켰다. 한마디로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개 사회적 환경은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의 책임에만 무게가 실리는 것이 현실이다. 불평등의 고리는 소득불평등에서 건강불평등으로 나아가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어느 사회나 불평등은 존재하지만, 가난이 죽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데이터를 이용해 몸과 질병의 사회사를 전한다.

전작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어떤 명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더 나은 설명을 찾아가는 과학적인 사유야말로 인류가 세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든든한 도구”라 말하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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