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글쓰기훈련]<552>필사-말더듬이의 비애
[365글쓰기훈련]<552>필사-말더듬이의 비애
  • 임정섭 기자
  • 승인 2013.02.04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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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글쓰기훈련]은 매일 하는 글쓰기 연습 프로그램입니다. 오늘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일부입니다. 주인공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말더듬'입니다. 어쩌면 이는 주인공이 금각사에 불을 지르게 되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결핍입니다. '말을 더듬는 행위'에 대한 설명이 절묘합니다. 

<553> 말더듬이의 비애

말을 더듬는다는 건 어쩔 수 없이 나와 바깥 세계와의 사이에 하나의 장벽이 되었다. 언제나 최초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와 주지를 않았다. 그 최초의 소리가 나의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 사이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할 때, 그 열쇠가 쉽게 열린 적이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대로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 사이의 문을 열어놓은 채 소통이 잘 되고 있지만, 내게는 그게 아무리 해도 되지 않는다. 열쇠가 녹슬어 버린 것 이다.

말 더듬이가 말문을 열려고 조바심을 치고 있는 동안, 나는 마치 내부의 찰진 찰떡에서 몸을 떼 내려고 파닥거리며 몸부림 치고 있는 참새와도 다를 바 없었다. 겨우 몸을 떼어 냈을 때는 이미 늦다. 바깥 세계의 현실이 내가 쩔쩔매고 있는 동안, 일손을 쉬고 기다려 주는 듯 여겨질 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다려주는 현실은 이미 신선한 현실이 아니다. 내가  애써서 겨우 바깥 세계에 도달해 보았자 언제나 거기에는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어긋나 버린... 그리하여 그것만이 내게 걸 맞는 듯한 낡은 현실, 절반쯤 상한 냄새가 나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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