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보이지 않는 화학전 ‘타감작용’
식물들의 보이지 않는 화학전 ‘타감작용’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12.07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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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 김선숙 옮김 | 더숲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한 자리에서 생을 시작하고 끝맺는 식물을 두고 대개 정적이라 여기기 십상이지만 이런 관점은 인간의 자리에서 바라본 것일 뿐 실상은 크게 다르다. 식물들의 리그에서는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호두나무와 적송의 아래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화학전이 펼쳐져서다. 두 나무는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기 위해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내뱉는다.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는 방식으로 다른 식물을 격퇴한다. 이를 ‘타감작용他感作用’ 혹은 서로 감수한다는 뜻의 조어 ‘알렐로파시allelopathy’라고 한다.

호두나무와 적송 외에 강한 타감작용을 하는 식물로는 국화과의 귀화식물 양미역취가 있다. 강변이나 공터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로 노란색 꽃들이 길쭉하게 뭉텅이로 자란다. 양미역취 또한 뿌리에서 독성물질을 내뿜어 경쟁자인 주변 식물의 발아나 성장을 방해하고 자신만 성장해 빠르게 그 일대를 잠식해 독차지한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보통 1~2.5m까지 자라지만, 원산지인 북아메리카에서는 절대 크게 번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양미역취와 싸우면서 진화를 거듭해온 주위 식물은 양미역취가 내뿜는 독성분을 방어하는 구조가 발달해서다.

하지만 어디 생태계가 그리 녹록하던가.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던 양미역취도 기세가 꺾이는 양상을 보였다. 한때 약해졌던 우리 야생초가 양미역취를 압도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로 ‘자가 중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주변 다른 식물이 없으니 독성분이 그 자신에 영향을 미쳐 자기 성장을 방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거대 괴물로 변해 여전히 난폭하게 굴고 있다. 무려 2~3m나 자라며 일본 토종 식물이 귀화한 양미역취의 화학물질에 아무런 대처도 못했다. 식물의 투쟁기 <싸우는 식물>(더숲.2018)이 전하는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식물들이 화학전을 벌인다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일부 수정)

책은 자연계에서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전략들을 전한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생생한 식물들의 삶의 현장을 보면서 식물의 생태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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