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인도하는 여자
죽음을 인도하는 여자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1.27 2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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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북데일리] <추천> 이탈리아 문학상 캄피엘로 상 수상작인 <아카바도라>(들녘. 2012)는 주인공 마리아가 양 어머니 보나리아와 처음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보나리아의 영혼의 자식이 된 것이다.

 소설은 1950년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소레니를 배경으로 입양을 소재로 한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아이가 없던 보나리아는 넷 째 아이로 태어나 친모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 마리아를 입양하고 새로운 가족이 된다. 바느질을 하는 그녀는 마리아를 여느 아이처럼 대한다. 특별히 애정을 쏟거나 하지 않는다. 마리아 역시 양어머니를 잘 따른다. 학교에 잘 다니고 그녀 눈 밖에 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밤중에 보나리아가 외출을 한 후 마을에는 누군가의 죽는다는 것이 궁금하지만 마리아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형제들과 어머니가 있는 집에 일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며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버려졌다는 걸 알지만 보나리아와 함께 지내는 일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아이가 된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마리아의 친구 안드리아의 형 니콜라가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게 된다. 니콜라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삶이 원망스럽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니콜라는 자신을 보러 온 보나리아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한다. 그는 보나리아가 ‘아카바도라’(끝내는 여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형의 방에서 나오는 보나리아를 본 안드리아는 형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고통스러운 그 사실을 마리아에게 말한다. 보나리아에게 모든 사실을 전해들은 마리아는 그녀를 떠난다. 삶에 대해 한 가닥의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던 니콜라에게 죽음은 유일한 선택이었을까. 보나리아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일까. 마리아는 보나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집을 떠나 아이들의 보모로 일하던 마리아는 보나리아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돌아온다.

 ‘그녀는 밤에 보나리아의 방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리아는 두 사람 모두에게 감옥에 갇힌 것 같은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행동을 실천하는 자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대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오를 때마다 그 일을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욕망 때문인지 신성을 모독한다는 느낌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231~232쪽

 죽음을 앞 둔 보나리아를 간호하면서 마리아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보나리아를 편하게 보내줄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안락사라는 조심스럽고 불편한 주제를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아쉬운 건 보나리아가 무슨 이유로 아카바도라의 삶을 살게 된 이유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혼자서 맞이해야 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나눠 줄 아카바도라의 생은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리아가 영혼의 자식이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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