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꽃피기까지의 산통 그려
종교가 꽃피기까지의 산통 그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1.09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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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구원....대륙의 아픈 역사 그린 소설

 

[북데일리] <장마딩의 여덟째 날>(2012. 삼화출판사)은 중국이라는 사회에 새로운 종교의 정착을 위해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통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물론 종교적인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은 아니다. 중국이라는 사회의 갈등과 변화를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는 과정을 빌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지오반니는 이탈리아에서 꼬르 신부와 함께 선교를 위해 중국이 도착한다. 신부는 지오반디에게 장마딩이란 중국 이름을 지어준다. 그에게 새로운 삶이 부여된 것이다. 그들이 마주한 마을은 이교도가 침범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늘어미 강을 중심으로 삼신할미사당을 지키고 보존하는 장씨 일가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장씨 일가는 한 목소리가 되어 성당을 무너뜨리려 했고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장마딩은 죽임을 당하고 꼬르 신부는 장씨 일가의 큰 아들 장톈츠의 처벌을 요구한다. 장톈츠는 처형 당한다. 하지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죽음에서 예수가 재림했듯 장마딩은 살아났다. 아니 처음부터 죽지 않았던 것이다.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꼬르 신부는 장마딩을 이용해 포교를 하기로 결심한다.

 대대로 내려온 관습과 전통을 지키려는 집단과 그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집단은 어떤 명분이 필요했다. 그 시대 중국은 혼란스러웠다. 의화단 운동이 일어났고 가난과 굶주림이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고 꼬르 신부는 종교를 조건으로 그들을 돌본다. 장마딩은 자신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을 느낀다. 그가 중국에 온 이유는 구원이었다. 한데 그는 많은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말았다. 성당을 떠나는 일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 여기고 그는 성당을 나선다.

 ‘좋아, 모든 게 마침내 끝날 때가 된 거야. 죽음이 미친 것과 멀쩡한 것을 모두 다 멈추도록 하겠지. 영원히 영원토록 멈추도록 하겠지.’ 268, 269쪽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해탈감이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이고 위안이던가! 그는 한 차례 또 한차례 고열의 혼미함 속에서 깨어났고 한 차례 또 한 차례 그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행복을 체험했다.’ 270쪽

 구원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던 건 장톈츠의 아내 왕석류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낳아 장씨 일가의 대를 이어야 했던 책임감과 남편을 잃은 슬픔은 그녀 스스로가 삼신할미가 되는 일이었다. 성당을 나온 장마딩과 왕석류의 만남은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을 피해 사당을 흘러온 장미딩과 그를 반기는 왕석류. 어쩌면 그것은 중국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암시하는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 속 한 장면을 떠올리는 일은 당연하다. 조선 말 천주교 박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점, 그 혼란스러운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무언가가 간절했을 것이다. 종교라는 틀 위에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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