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누구보다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가진 한 남자는 사는데 두 개의 F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Forget 잊는 것, 다른 하나는 Forgive 용서다. ET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고(故) 채규철 선생의 명언이다.
그는 불행의 요소를 모두 가졌던 사람이다. 2006년 작고할 때까지 불편한 몸이었지만, 잊고 용서하라는 두 가지 신념을 붙들고 대안교육과 장애인 복지운동 등 사회활동에 헌신했다.
처음부터 불편한 몸은 아니었다. 그의 특별한 별명과 관련 있다. 1968년 10월에 일어난 교통사고가 삶을 뒤바꿔버렸다. 그 사고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무려 스물일곱 번이나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다. 화마는 그의 귀와 한쪽 눈을 앗아갔다. 입과 손은 물론 눈물샘마저 태워버렸다. 그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성으로 그를 간호하던 아내마저 폐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삶의 의욕을 잃고 수면제를 모았다.
하지만 눈에 밟히는 아이들 때문에 다시 한번 살아보겠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얼마 후 1986년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우고 대안 생태 학교를 시작했다. 공부와 입시에 치여 지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선물하고 싶어서다. 그곳을 거쳐 간 아이들은 선생을 따르며 붙여준 별명이 ET 할아버지다.
그는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가치는 ‘잊는 것’과 ‘용서’라 했다. 사고 후 고통을 잊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거라며 이미 지나간 일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일이 아니라 말한다. 잊고 비워내야 비로소 새것을 채우고 나아가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는다는 실천적 중요성을 전했다.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아르테.2018)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일부 수정)
환경을 이겨낸 그의 삶과 철학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