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가 쓴 듯 '반가운 시'
내 어머니가 쓴 듯 '반가운 시'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2.2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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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사투리가 정겨운 시집

[북데일리]<추천>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프다. 그럴 때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면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니 그런 어머니가 들려주는 귀한 말을 시로 만날 수 있는 이정록의 <어머니 학교>(2012. 열림원)는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시집인지 모른다. 마주하는 시마다 정겹고 친근하다. 촌부로 살아오면서 자연에서 얻은 귀한 지혜가 가득하다. 자식의 아픈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믐달 - 어머니 학교 18

가로등 밑 들깨는 / 올해도 쭉정이란다. / 쉴 틈이 없었던 거지. /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 지나고 봐라. 사람도 /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음 없었던 보름달 없지. /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 어떤 세상이 맨날/보름달만 있겄냐? / 몸만 성하면 쓴다. (38쪽)

속상한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우리를 옴싹달싹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그 세월을 견딘 어머니는 다 알고 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아직 젊다고 믿기에 깨닫지 못하는 진리, 인생 고개마다 얻는 교훈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말이다.

살과 뼈 - 어머니 학교 35

연살 / 바지게살 / 창호지문살 / 암만 생각해도 / 살과 뼈가 바뀐 것 같지 않냐? / 왜, 연뼈 / 바지게뼈 / 문뼈라고 하지 않을까? / 하지만 그게 아녀. / 문살은 문풍지가 목뼈고 / 바지게살은 지게다리가 정강이뼈고 / 연살은 바람구멍이 등뼈인 겨. // 왜냐면, 살은 타는 거고 / 뼈는 우는 것이거든. / 그런데, 뼈와 살이 / 한꺼번에 울고 탈 때가 있어야. / 그건 새끼가 아플 때여. / 할머니는 생짜로 셋이나 앞세웠으니 / 뼈고 살이고 캄캄하게 눈이 멀어서 / 대낮에 차에 치인 겨. / 살을 끌어다 숨통을 끊으신 거여. / 당신의 뼈로 당신의 고통을. (66~67쪽)

뼈가 울 정도의 고통이라니,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만 보살필 뿐, 내 부모의 사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우리는 언제나 철이 들까. 쉬이 더러워지는 게 삶이라고 말해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록된 72편의 시를 읽으면서 많이 웃고 많이 아팠다. 시와 함께 수록된 시인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어머니의 생각과 모습을 시로 녹아낸 시인이 몹시 부러웠다.

어머니의 넓고 포근한 품처럼 따뜻한 시집이다.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만난 듯하다. 힘들고 지칠 때 이 시집을 펼친다면 어머니의 손을 잡은 듯 기운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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