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야 사는 '행복이란 괴물'
죽여야 사는 '행복이란 괴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2.13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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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로 행복한 사람들의 실체

[북데일리]엘리자베스 파렐리의 <행복의 경고>(2012.베이직북스)는 현대인의 과부화된 행복을 낱낱이 보여준다. 책 속엔 욕망으로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혼이 존재한다.

욕망은 나쁜 게 아니다. 필요하기에 무언가를 원하는 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그러나 원하는 것들에 대해 필요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의식주를 비롯하여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미적인 아름다움, 문화적인 조화, 권위와 명예를 얻으려 기본적인 것들을 파괴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욕망은 건축에도 아름다움을 요구한다. 혼탁해진 영혼을 달래며 정화의 기능을 위한 교회나 성당도 화려하게 변신한다. 그곳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그 오염물질을 정화하기 위해 도시는 또 무언가를 해야 한다. 환경문제는 사람들을 도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전원으로 다시 돌아가려 한다. 결국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가 아닌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를 꿈꾸는 것이다.

‘마음도 몸과 같다. 자동차는 우리의 삶에 윤활유를 넣고 싶은 본능적 억압의 산물이다. 또한 자동차는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가장 성공적으로 우리와 시간과의 불화를 감소시켜 준다. 하지만 윤활유 역할을 하는 다른 성공적인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자동차는 해가 되어 되돌아온다. 움직임 없는 속도와 연결 없는 통로의 두 배로 진한 마취제는 우리의 몸과 마음, 도시, 더는 줄일 수 없는 움벨트, 지구를 파괴할 위험에 빠트린다. 더 빨리 학습하지 못하고, 영리한 자동차보다 더 영리해지지 못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열망하던 편안함이 사실은 변장한 적임을 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237쪽

책에 등장하는 시드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품으로 가득 찬 세계 경제는 수많은 하우스푸어를 낳고 도시 빈곤층을 증가시킨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다. 저자는 묻는다. 그러한 모든 주택 정책들이 시작된 곳이 어디인가 꼬집는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오염시키고, 더 많이 낭비한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이것이 우리의 권리라고 믿는다. 이전 그 어떤 사회도 이렇게 특권을 부여받지 않았으며 우리가 이 정도는 독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이렇게 믿는 이유는 믿고 싶은 대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과 권리 사이의 생략된 틈에서 그 차이마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293쪽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소유해야 한다. 행복을 위한 재화는 한정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축척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누구나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나만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야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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