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에 피어난 가족애
폭풍우 속에 피어난 가족애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2.05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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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허리케인 카트리나 습격 생생

[북데일리] ‘끔찍했다. 바람이다. 매질하는 데 쓰이는 전깃줄처럼 사나운 채찍을 휘두른다. 비. 살갗을 후려치는 돌멩이처럼 우리의 눈 속을 파고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든다. 물. 사방에서 소용돌이치며 모였다가 굽이쳐나가는 물은, 그 아래 가라앉은 웅덩이 흙 때문에 붉고도 붉어 보여서 피가 그치지 않는 거대한 상처 같다. 마당에 남아 있던 고물들. 냉장고며 잔디 깎는 기계며 자동차며 침대 매트리스가 선박들처럼 떠다닌다. 나무들과 부러진 나뭇가지들. 끝없이 터지는 폭죽처럼, 자꾸 자꾸, 그칠 줄 모르고 펑펑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른다. 우리들. 지붕 위에서 꼭 껴앉고 하나로 뭉쳐 있는 우리들.’ 346쪽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경을 묘사한 이 글은 <바람의 잔해를 줍다>(2012.은행나무)의 일부다. 소설은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다가오기 열흘 전부터 폭풍이 닥친 당일과 그 다음 날까지 열이틀 동안의 이야기다. 하루 단위로 일어난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빠는 허리케인에 대비로 집안을 살피지만 열여섯 스키타는 새끼를 낳는 투견 차이나를 돌보느라 바쁘다. 화자인 열다섯 에쉬는 막내 주니어를 낳고 죽은 엄마를 떠올리며 그 과정을 지켜본다. 스키타에게 차이나는 개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에쉬는 오빠 친구인 매니의 아이를 가졌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소설은 차이나가 낳은 강아지를 돌보는 스키타의 살뜰함과 임신으로 인한 에쉬의 내면 감정 변화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세하게 담아낸다. 거기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허리케인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 독자를 매료시킨다.
 
 집안을 정비하다 손가락을 절단한 아빠는 더 이상 허리케인을 막을 수 없다. 가난한 흑인 가족에게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비상식량을 사는 게 전부였다. 드디어 카트리나가 집을 강타한다. 차이나와 강아지들까지 모두 모여 대피한다. 그 와중에 에쉬의 임신 사실은 모두에게 들어난다. 서로를 의지하며 견디는 시간, 그들은 하나가 된다. 긴박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에쉬는 확인한다. 엄마의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빠의 모습은 숭고하다.
 
 ‘아빠는 나무가 아빠 방 위로 쓰러졌을 때 바지에 집어넣던 꾸러미를 꺼냈다. 깨끗한 비닐봉지였다. 아빠가 봉지를 여니 그 안에서 사진들이 나왔다. 스키타 오빠가 다락방 문을 닫아 우리 모두 어둠 속에 봉인되기 직전, 아빠는 머뭇거리는 손끝으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만졌다. 그 위에 떨어진 속눈썹을 닦아내듯이 가볍게. 하지만 아빠의 번들거리던 손가락은 금방 멈추었고, 아빠는 다시 사진을 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엄마 사진이었다.’ 343쪽
 
 강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집과 강아지를 잃었고 차이나는 사라졌다. 하지만 스티카는 반드시 차이나가 돌아올 거라 믿고 그 자리를 지킨다. 작가는 삶을 뒤흔든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여전히 삶은 이어진다는 분명하고 단호한 사실을 담담하게 말한다. 수많은 피해와 생명을 앗아간 잔인한 카트리나를 다뤘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가족들의 사랑과 생명력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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