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든 인간의 욕망
냉장고에 든 인간의 욕망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2.03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몸집 불린 냉장고는 대량 소비의 상징

[북데일리] 냉장고는 하루 종일 전원이 켜져 있고 가정에서 가장 덩치가 큰 전자제품이다. 갈수록 커져만 가는 냉장고는 시대의 문화적 현상을 반영한다. 언제부터 900리터가 넘는 냉장고를 사용했던가. 모든 가전 기기들이 모습을 축소시킬 때 유일하게 냉장고만은 살집을 키워나갔다. 왜 그럴까.

<욕망하는 냉장고>(애플북스.2012)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그렇다 하여 냉장고를 소개하는 책은 당연히 아니다. 음식과 건강, 과학기술과 경제적 가치, 현대인의 욕망과 습관 등을 냉장고라는 특이한 소재로 풀어냈다.

책에 따르면 현재 냉장고 보급률은 100퍼센트가 넘는다. 1990년대 중반 국산 양문형 냉장고의 용량이 674리터였다. 2010년에 이르러서 700리터가 판매량의 상한을 달리고 2012년에는 910리터짜리 냉장고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매일 섭취하는 양이 증가했다고 가정해도 과하다. 왜 이렇게 덩치가 커지는 걸까. 이에 책은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1인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데 냉장고가 대형화 추세에 있다는 건 기현상이 아닌가. 가족이 늘어난다거나 음식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것은 2차적인 이유다. 자꾸 커지는 진짜 이유는 어찌 보면 참 단순하다. 너무나 많이 팔고 너무들 많이 사들이기 때문이다.”- 26쪽

냉장고 대형화의 주된 원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있다는 말이다. 책은 대량소비는 미국의 발명품이라 주장한다. 미국은 대량생산된 식품을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으로 원가를 낮춰 더욱 싼 가격에 대량으로 판매해 이윤을 추구하는 획기적인 판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런 미국식 대형할인점이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한국에 상륙해 한국인의 일상이 됐다는 것.

사실 대형할인점에 장을 보러 갔다가 예상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하고 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원래 구입하려던 품목에 얼마를 더하면 1+1, 한정판매, 오늘만 이 가격 등의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필요치 않아도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구입한다. 결국 먹지 못하는 식자재는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되기 일쑤다. 이 같은 문제점은 음식물 쓰레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온도가 낮다는 이유로 막연히 청결할거라 생각했던 냉장고에 세균이 가득했다.

냉장고 균과 화장실 균을 비교한 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당연히 화장실이 더 지저분할 거라는 일반적 예상을 뒤엎고 책은 변기보다 냉장고에 평균적으로 10배 정도 더 많은 세균이 검출된다고 말했다. 흙이나 세균이 더 많이 드나드는 채소칸은 최대 만 배까지 균이 더 많은 사례도 있었다. 이어 채소로부터 시작된 식중독으로 사망자가 나왔다는 대목은 충격적이다.

2011년 5월 북부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수께끼의 병원체로 첫 번째 사망자가 나타났다. 그 후 열흘 만에 10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원인은 새싹채소에 의한 장출혈성 대장균(O-104:H4)으로 밝혀졌다. 학계에 보고된 최초의 사례자는 한국에 있었다. 2004년 8월에 한 여성이 중환자실로 긴급 이송됐고 검사 결과 장출혈성 대장균이었다. 독일에서 발견된 것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변이된 변종이었다.

여러 주장이 있지만 씨앗 단계부터 오염됐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음식은 길을 따라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각 나라에서 들여오는 농산품이 검역의 한계를 안고 우리 가정 냉장고로 직행하는 것이다. 책은 이 같은 맥락에서 해외에서 유입되는 유기농 식품이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라 역설한다.

이처럼 냉장고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건강 질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을 거쳐 푸드 마일, 로컬 푸드, 뉴욕의 프리건 등 음식과 관련된 사안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책은 냉장고를 현명하게 채우고 비우는 실천을 통해 새로운 음식 문화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