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위의 박사는 ‘술사’
박사 위의 박사는 ‘술사’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1.30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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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유희 속에 숨어있는 진실 설득 돼

[북데일리] “남다른 상상력은 결국 남다른 체험에서 비롯된다. 회색빛 청춘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방황했던 체험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재능을 찾아 미래의 방향을 잡는 기반이 되어준다. 방황 속에서 방향이 잉태된다.”

<체인지>(위너스북.2012) 저자의 말이다. 그는 책을 통해 목적의식을 잃지 않고 방황하는 체험은 경이로운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그 방황의 체험은 즐겁고 신나게 글을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책은 이처럼 상상력은 체험적 상상력일 때 창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주목한다. 체험하지 않고 머리로 아는 것은 다만 차가운 지식일 뿐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었다.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얻은 깨달음體을 통해 가슴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仁할 때 비로소 탄생하는 지식知’ 이른바 ‘체인지(體仁知)’다.

책을 내용이 빤한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기에는 각 장마다 붙은 제목에 위트와 해악이 넘친다. 이를테면 인(仁)이라는 장에서 ‘싸가지 2.0의 시대 ‘네 가지’를 생각하다’나 ‘의미가 심장에 박히면 의미심장해진다’ 등이다. 제목만으로 사람을 홀리는 기술이 있는 저자의 남다름이 드러난다.

단박에 눈길을 끌었던 ‘싸가지 2.0의 시대 ‘네 가지’를 생각하다’는 대략 이런 내용이다. 이외수 작가는 고품격 인간이 갖춰야할 필수 지참 4종 세트에 ‘개념, 교양, 양심, 예의’가 포함되는데 ‘싸가지 2.0의 시대’는 네 가지 진상이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갖춰야할 ‘개념, 교양, 양심, 예의’가 없는 것도 모자라 존중보다 상대 무시, 배려보다 자기 먼저, 겸손보다 자기 과시, 감사보다 자기 욕심만 차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기본 적인 것들이 갖춰질 때 훈훈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될 거라 주장한다.

이어 학사‧석사‧박사 위의 학위가 있다는 재미있는 대목도 있다. 박사 위의 학위라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알고 보니 ‘밥사 ‧ 술사 ‧ 감사 ‧ 봉사’라는 말이었다. 인간에게는 남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즐겁고 신나는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이타적 욕구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맥락에서 ‘밥사’는 말 그대로 함께 일하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밥 한 끼 사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학위다. ‘술사’는 힘들 때 고민을 함께 들어 주면서 술 한 잔 기울여주는 사람에게 수여한다.

‘감사’는 못 가진 것을 가지려는 욕망에 지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매사에 감사를 표하는 사람에게 준다. 마지막 ‘봉사’는 가진 것을 남과 나누며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를 말한다.

읽고 보니 말이 된다. 언어의 유희 속에 숨어있는 진실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순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덕목들을 명쾌하게 꼬집었다. 책은 이처럼 개인의 성공에 눈이 멀어 필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데 급급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 미덕을 간과하는 우리에게 거침없는 조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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