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린 비 ‘살창우, 광해우, 태종우’
한 서린 비 ‘살창우, 광해우, 태종우’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10.2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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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담아낸 것들> 홍남일 지음 | 플랜비디자인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절기상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 곳곳에 비 소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비(雨)의 모양새를 보고 여러 이름을 붙였는데 <시간이 담아낸 것들>(플랜비디자인.2018)가 소개한 역사 속 비에 스며있는 사연은 처연하다.

회한 서린 비로는 ‘살창우(殺昌雨), 광해우(光海雨), 태종우(太宗雨)’가 있다. 살창우와 광해우는 영창대군과 광해군의 이야기서 비롯됐다.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자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은 겨우 여덟 살에 역모의 누명을 쓰고 강화에서 증살이로 끔찍하게 살해된다. 영창대군을 방에 가둬 두고 아궁이에 불을 계속 지펴 결국 방바닥 열기로 타 죽도록 한 잔인한 방법이다.

이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불을 지피는 순간부터 장대비가 쏟아져 장작이 잘 타지 않아 집행관들이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음력 2월 10일 영창대군은 숨을 거뒀고 해마다 이 날짜 전후에 비가 와 사람들은 영창대군의 넋을 달래는 살창우가 내린다며 안타까워했다.

광해우는 비록 친형과 어린 동생을 죽인 왕이지만, 임진왜란 후 왕권을 일으키려 노력했던 인물 광해군의 넋을 기리는 비다. 인조반정으로 결국 제주서 쓸쓸하게 한을 품은 채 죽던 음력 7월 초하루 무렵 세찬 비가 내렸다. 이후 임종한 날 즈음 제주 사람들은 “7월 초하룻날이여, 대왕 어붕하신 날이여, 가물다가도 비오람서라”라며 광해우를 기다리고 광해군의 넋을 달랬다.

그런가 하면 왕자의 난, 신하들과 격한 대립으로 다소 거칠고 몰인정한 임금으로 그려지는 태종과 관련한 태종우도 있다. 백성을 향한 마음은 어떤 성군에도 뒤지지 않았던 그가 임종이 임박했을 때 일이다. 죽어가면서도 기우단을 차려 놓고 “내 모든 악업을 기꺼이 받아들이매, 나를 거두고 백성에게 비를 내려주소서.”라며 며칠을 빌고 또 빌었다. 그의 치성이 닿았을까. 그가 죽고 비가 내렸다. 음력 5월 10일이었다. 이후 태종우가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 밖에도 책이 풀어내는 우리네 문화 이야기는 다채롭다. 아리랑을 시작으로 전통 혼례와 신식 결혼, 명성황후는 왜 사진을 남길 수 없었을까 등 역사적인 내용도 풍성하다. 틈틈이 끼어둔 ‘우리말 사연’은 별미다. ‘골탕 먹이다’와 ‘기별이 없다’는 말 뿌리가 무엇인지 ‘서울깍쟁이’ ‘흥청망청’의 말 뿌리가 어디인지 살피다 보면 어느새 두툼한 책 끝으로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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