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은 서울대 총장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은 서울대 총장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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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예로 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암기하거나 빈칸을 채우는 데에는 아주 능숙하다. 그들은 듣고 배운 것을 응용하라는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배우는 데 그칠 뿐, 실제로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논문을 쓰게 될 때, 서울대생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독창적으로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많은 서울대생들은 새로운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빈칸 밖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결핍은 한국사회의 생산성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서울대생의 맹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이는 다름 아닌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다. 요즘의 대학생들을 ‘반쪽이’라고 말하며 잘못된 현행 교육시스템을 비판해 온 그에게 현실은 늘 답답하고 안타깝다. 경제학 교수 출신으로 2002년 6월 서울대 총장에 선출된 후 “문과 출신은 자연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너무 없고, 마찬가지로 이과 출신들은 인문사회과학에 대해 너무 무지해요.” 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고도 한다.

<나는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에디터. 2006)의 저자 ‘프레시안’ 논설위원 박태견씨는 현행 교육시스템을 향한 정 총장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대세가 ‘통합형 논술’로 변해가는 교육환경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은 ‘쓸모’ 있다.

정보가 넘치는 인터넷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단편적 정보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찾아내 줄을 엮는 창의 경쟁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존의 교육방식 역시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정 총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표제인 ‘비빔밥 인간’이란 단편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다양한 지식들을 스스로 융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형이다. 이는 ‘21세기 유목민’이라는 단어로 그 맥이 이어진다. 책은 “21세기의 유목민은 정착하지 않는 떠돌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지향을 벗어나 다양한 가치와 사고를 통합하는 자유로운 창조정신을 말한다”고 정의다.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유목민 정신을 강조하는 정총장의 목소리는 결연하다.

서울대가 2008년부터 본격시행하기로 한 ‘통합논술’을 떠올린다면 현재의 논술시험과 학습체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논술문제로 채택됐던 <어린왕자>를 예로 드는 일화는 충격적이다.

몇 해전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인용, 서울대에서 제출한 논술문제에 대해 정총장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이유는 학원에서 논술과외를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또 하나의 암기식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서울대 교수 모두에게 기존 논술시험의 문제점을 곱씹어 보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당시 문제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제시하고 인간소외에 대해 논하라’ 였는데 시험결과 평균적으로 응시자 10명중 7명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이용해 인간소외를 설명했다고 한다. 붕어빵 같은 답안을 보고 제출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학원에서 이미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고 학생들에게 모범답안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정 총장은 “현재 논술시험에서는 사회과학 문제의 경우 어떤 질문이 나와도 효율성, 형평성을 기준으로 답을 쓴다.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쓰다보니 80%가 똑같다. 다시는 서울대에서 ‘학원형 논술’은 제출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올 문제는 통합교과형이어서 한 과목만 잘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모든 과목을 고르게 잘해야 풀 수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독서를 해야 풀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나의 정답’도 없는 문제. 창의성의 대원칙은 ‘자기주장 펼치기’이다. 정답의 강박관념이나 상식적인 답변에서 벗어나 좀 틀릴 것 같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며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주장을 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책은 현 논술교육의 허실을 찌르고, 정 총장이 주장하는 ‘통합논술’의 윤곽을 드러냈다. 단순히 정총장의 인터뷰, 강연내용, 자료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21세기 유목민, 비빔밥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과 사고 자체를 바꾸는데 필요한 요건들을 체계적으로 기술했다. 논술위원다운 명료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통합논술을 향한 지름길을 안내하는 저자의 달변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사진 =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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