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니쉬, 장자, 김기덕이 함께 꿈꾼 `나비`
라즈니쉬, 장자, 김기덕이 함께 꿈꾼 `나비`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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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영화 ‘빈집’에서 김기덕 감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는 장자의 말을 인용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전단을 붙이고 다니는 남자 태석과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며 사는 선화의 기묘한 만남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되서도 현실인지, 꿈인지 명확하지 않다.

유명한 인도의 현대 철학가 오쇼 라즈니쉬는 <인생에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승과의 위대한 만남>(비전코리아. 2006)에서 김기덕 감독이 인용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호접몽)’ 을 풀이한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풀이 죽은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장자에게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장자는 “꿈 하나 때문에 망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괜히 슬퍼한다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장자는 대답했다.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래 꿈은 꿈일 뿐이지 그걸 몰라서 우는게 아니야. 문제는 내가 누구냐는 거야. 장자가 잠 속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다면 나비가 잠 속에서 장자가 되는 꿈을 꾸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어? 그래서 그런거야. 내가 누구냐고. 장자야. 나비야?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다면 나비도 잠 속에서 장자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는 거야. 문제는 지금 장자가 꿈에서 깨어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되었다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내가 장자냐 나비냐. 말 좀 해보거라”

(본문 중)

오쇼 라즈니쉬는 “마음은 장자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마음은 전적으로 무력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던 기이한 천재 장자. 스승인 노자마저도, 붓다도 넘어섰던 장자는 깨닫지 않은 제자는 그냥 놔두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쫓아다녔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깨닫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쉬운 것이 바른 것이다”

혜안의 소유자 장자에게 오쇼 라즈니쉬는 묻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른 것을 어렵게 만드는가?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른 것을 어렵게 만든다. 왜 그러는가?” 스스로 얻은 대답은 ‘대상이 어려워야 에고는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책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예로 들어 장자를 설명한다. 에드먼드 힐러리가 최초 등반에 성공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에서 죽었다. 20세기 내내 수많은 등반대가 오르고 또 올랐다. 힐러리가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도달했을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사람이 서 있을 만한 공간밖에 없었다. 훗날 힐러리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무엇을 위해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습니까? 왜 그렇게 위험한 도전을 했습니까?” 이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도전을 해야 했습니다. 등반가의 자존심 때문에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저는 등반을 사랑합니다. 에베레스트가 거기 있는데 아무도 정복을 못했다는 사실은 수치처럼 다가왔습니다. 무엇을 찾기 위해 정상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는 사실에 정말로 행복합니다”

힐러리의 말에서 오쇼 라즈니쉬는 ‘인간의 에고’를 찾는다. 그리고 종교는 모두 바른 것을 어려운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인지한다.

“바름과 쉬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오쇼 라즈니쉬가 책을 통해 만난 20명의 위대한 인물 중 장자를 만나며 깨달은 철학이다. 바른 삶에서 시작했는데도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는 바른게 아니다.

“삶에서 가장 쉬운 것,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선택하면 그대는 바르게 될 것이다. 혹은 먼저 바른 것을 택해 갈 수 있다. 이 경우에는 바름이 쉬움과 편안함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붓다, 예수, 장자, 노자, 크리슈나, 헤라클레이토스... 20명의 인물과의 만남을 통해 현대인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전해주는 현대 철학자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묵직하다. 접근하기 어려운 사상과 문제에 천천히 다가선다. 그들의 독특한 사상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묶어내 거대한 철학과 사상을 한권의 책에 담는다.

책의 내용은 그리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나볼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빠르게 읽히는 책들이 그만큼 쉽게 지워진다면, 천천히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인문서의 죽음’이라고도 지목되어 온 출판계의 징후를 떠올려 본다면 이 책의 가치는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20명의 사상과 삶을 한권에서 이토록 친절하고 진중한 목소리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사진 = 영화 ‘빈집’ 스틸컷)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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