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 '광채의 근원'
고 박완서 '광채의 근원'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23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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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집...'존재하는 것들은 얼마나 귀한지'

[북데일리] <세상에 예쁜 것>(2012. 마음산책)은 고 박완서 작가의 유고 산문집이다. 책은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일기, 특별한 이에게 전하는 편지, 다시 갈 수 없는 고향과 그리운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일상의 기록이다. 해서 솔직하고 잔잔하고 편안한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짧은 글들은 먹먹하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방학마다 찾은 고향과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곳에 대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글로 붙잡아 두고 싶은 애절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인 전쟁에서 살아남은 삶, 살아내기 위해 감당해야 했을 갖은 수모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모질고 거친 세월을 견딘 작가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세상에 예쁜 것’ 이란 제목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것들인지 이제 알기 시작했다고 말할 뿐이다.

남편이 투병 중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을 먹을 수 없었던 날들, 아들을 잃고 침잠했던 시간들, 그 날카로운 슬픔을 무디게 만들어준 작고 작은 손녀 딸과의 달콤한 시간들이 그랬을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살아온 세월이 많다고 해서 절망과 좌절의 구덩이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으니까. 그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은 듯한 글이라 더 절절하다.

‘내 기억의 창고도 정리 안 한 사진 더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뒤죽박죽이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고 나라는 촉수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나 자신도 판독 불가능한 것이 있지만 나라는 촉수가 닿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어두운 기억도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르는 법이다.’ 115쪽

마지막 글이라는 말 보다는, 간직된 글이라는 말로 기억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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