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음식, 추억 버무린 에세이의 맛
지식과 음식, 추억 버무린 에세이의 맛
  • 북데일리
  • 승인 2005.07.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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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가난한 입을 달래주던 아이스께끼와 하드,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홍시와 감나무, 배고픈 군부대 시절의 냄비 뚜껑과 라면.

누구나 음식과 관련된 아련한 추억들이 있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 따라서 잊혀진 사람을 불러오고, 잃어버린 맛을 떠오르게 한다. 새 책 `내 인생의 밥상`(바다)은 바로 그 음식과 사람, 그리고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원재훈이 쓴 이 책은 40년 인생에서 인연을 맺은 음식과 사람의 이야기로, 그 속에는 세상사의 여러 표정들이 담겨 있다.

돈까스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촌놈 친구가 맘에 드는 아가씨와 첫 데이트에서 돈까스를 시켰다가 일어나는, 배꼽 쥐는 해프닝과 습작생의 꼬리를 달았던 대학 신입생 시절, 첫 원고료를 탄 한 선배의 `한 턱`으로 우르르 몰려갔던 혜화동 떡볶이집의 소란스러움....

반면 큰아버지와 중국집에 가서 짬뽕과 자장면의 차이에서 오는 삶의 철학을 깨달았던 순간, 한 선배와 추운 겨울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영등포 사창가의 포장마차와 호객을 하는 윤락녀와 만남에서 깨달은 삶의 사유도 있다.

책에는 음식에 얽힌 다양한 일화 외에도 여러 가지 맛깔스런 반찬이 등장한다.

생전에 맛있는 것은 안 먹고 소금이며 깨소금, 고추 가루 하나 없는 맨 음식을 그대로 먹었다는 성철 스님의 청빈한 삶에서 설탕이 뒤범벅된 도넛 같은 섹스, 달콤한 음식들, 팬들의 환호 사이에서 뚱보가 되 버린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독`, 그리고 김동리 선생과 초콜릿에 대한 따뜻한 기억까지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

여기에 시인인 작가의 탁월한 감성과 언어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꽃전을 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제 나는 어린 시절처럼 꽃잎을 뜯어먹지 않는다. 대신 꽃을 눈으로 먹는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갈치를 보며 “이 갈치를 손에 쥐면 내 살 갓에 상처가 나 당장이라도 피가 흐를 것 같다”는 문장들이 그것이다.

`내 인생의 밥상`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돈 버는 법을 제시해주지도, 내면을 단련시키는 방법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라는 냉철함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작가의 과거 추억들을 한 개씩 한 개씩 꺼내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는 그 순간만이라도 휴식할 것을, 그리고 행복한 삶이라는 게 돈 이외에도 `무언가 더`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철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며, 웃기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한 우리들의 지난 시절. 음식으로부터 그 소중한 추억들을 이끌어 내는 작가의 `요리 솜씨`에 많은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낄 것 같다. [북데일리 제성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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