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기적의 책
‘굳은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기적의 책
  • 북데일리
  • 승인 2006.01.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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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난 꿈을 버릴 수 없어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원규씨가 매일경제신문에 했던 말이다. 마흔살이 되던 1999년. 수년 내에 온몸이 마비되어 사망한다는 ‘루게릭병’ 선고를 받은 후 지금까지 그는 한시도 희망을 놓아본 적이 없다.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동아일보사. 2005)를 읽으며 독자가 느끼는 것은 인간의 강한 의지다. 단 한 장, 아니 한 줄의 문장도 쉽게 넘어 갈 수 없는 이유는 혼자 힘으로는 의자에 앉거나 설 수도 없는 그가 매일 8시간씩 1년간 목숨을 다해 써내려간 글이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이후 혼자 힘으로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게 된 그는 스스로 일어날 힘이 없어 직장에 나간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꼼짝 없이 종일을 누워 지낸다. 안면근육도 많이 빠져나가 아랫입술과 턱주변이 일그러졌고 웃음과 울음을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목근육의 약화로 머리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가 앞쪽이나 뒤쪽으로 꺾여 스스로 고개를 들 수도 없다. 혼자 힘으로는 단 한권의 책도 가져다 볼 수 없고 책장을 넘길 수 도 없는 그가, 어떻게 책을 집필 할 수 있었을까. 몸이 건강한 사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 하나에 의지해 매일 8시간씩 글을 썼다는 굳은 의지앞에서는 ‘기적’도 남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글과 책에 대한 열정의 모체는 ‘문학’이었다.

“작은 누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새침데기 문학 소녀였다. 나는 누나가 노트에 끄적여 놓은 시나 일기를 몰래 자주 훔쳐보았는데, 그중에는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 내린다’ 라는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Apolinaire)의 시도 있었다. 내가 만약 문학적 감수성이 있다면 그 출발은 바로 작은 누나 일 것이다.”(본문 중)

동성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병을 얻어 교사직을 그만뒀지만 발병1년 전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에 합격해 수학했고 2004년 드디어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정도로 문학을 향한 열정은 남달랐다.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그에게 누나는 많은 영향을 미쳤던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책이 주는 감동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후 10년이 지난 1999년 가을.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던 그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부부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곧 마음을 잡고 다시는 울지 말자고 서로에게 약속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약속을 한번도 어겨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안보는 데서 가끔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나에게 용기를 주려고 애쓰지만 가끔 퉁퉁 부어 있는 두 눈을 볼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치유의 각오를 더욱 새롭게 다진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내가 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아내의 환한 미소를 언제까지나 지켜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아내. 이원규씨는 ‘문제없는 부부는 없다’는 말로 자신의 병을 ‘일축’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만 가지고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고 배려하는 측은지심과 인내심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2인 삼각경기를 예로 드는 비유는 탁월하다. 2인 삼각경기는 경기도중 한사람이 예기치 않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거나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두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기 위해서는 때에 따라 주변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승과는 거리가 멀게 된 경기를 마치기 위해서는 묶여 있는 끈을 풀지 않고 끝까지 헤쳐 나가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두터운 부부애를 증명한다.

이원규씨는 혀가 굳어 말을 하지 못하지만 음성변환장치가 개발된다면 스티븐호킹박사처럼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어떤 순간에서도 그는 결코 삶을 비관하지 않는다. 평소 좌우명처럼 여기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변함없는 희망아래 소중한 삶을 불태운다.

“인간은 융통성 있는 동물이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잘 적응 할 수 있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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