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글쓰기 끝장을 봐야"
박찬욱 감독 "글쓰기 끝장을 봐야"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2.11.1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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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교하도서관에서 강연

[북데일리] “딜레마 상황에서 포기하는 나약한 사람보다는,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은 없어도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남 탓하지 않고 자기가 짊어지고 가려는 사람이 제 영화의 인물들이다.”

지난 15일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이 자신의 영화와 삶에 대해 강연을 했다. '명사, 그들의 삶을 읽다'라는 행사의 일환이었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 니콜 키드먼과 <스토커 Stoker>라는 영화를 찍고 돌아왔고, 내년 2월에 헐리우드에서 개봉 예정이다. 미국에서의 영화 촬영 에피소드와 감독이 된 계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들려줬다.

13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해 영화를 찍었고, ‘한국과 너무나 다르다’ 하지만 ‘결국 영화인은 똑같구나’라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미국의 투자사인 폭스 써치라이트(Fox Searchlight, 20세기 폭스의 자회사)의 간섭이 대단해서, 촬영 첫날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각본이나 편집은 말할 것도 없고, 배우들의 가발,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트집 잡고, 자신들의 의견주장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 같은 상황이라는 것. 하지만 “차츰 그것에 적응이 되고, 많은 논쟁을 통해 결국은 서로 만족스런 영화를 만들게 됐다. 헤어질 때는 끌어안고 울 정도로 동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영화를 좋아했지만 연극영화과에 갈 용기가 없어 철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를 보고 ‘세상에, 한국에 이런 영화가 있나?’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면서 ’이건 나의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두용 감독의 ’해결사‘와 ’피막‘이 ’저를 미치게 만든 영화들‘이라고 전했다.

문학을 좋아 한다는 그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래캥>에서 모티브를 얻어 영화 ‘박쥐’를 찍었다.

“특별히 원하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에 툭 던져지는 상황. 그로 인해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그 딜레마가 감옥이 되어 양자택일에서 뭘 택해도 나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런 딜레마 상황에서도 포기하는 나약한 사람보다는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은 없어도 선택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올드보이’의 오대수 같은 인물” 이라고 했다.

영화 속 폭력 장면에 대한 사람들의 지적과 공격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들려줬다. “스스로도 민감하게 생각을 한다. 언제나 그것을 단순한 얘깃거리, 구경거리가 아닌, 폭력을 둘러싼 윤리, 도덕적인 면을 가장 중시한다. 당장은 보기에 역겹거나 불편하더라도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우리 생활에 늘 존재하는 것이어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폭력이 사람에게 주는 공포나 고통을 성찰해 보려고 만드는 장면이다.”

그간 그의 영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관객들이라면 조금은 그것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었을 듯 싶다.

그는 평론집 <박찬욱의 몽타주>와 <박찬욱의 오마주>(마음산책. 2005)을 통해 날카롭고 맛깔스런 글 솜씨도 보여주고 있다.

“글을 쓰다 막혀서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없는 경우, 진부하고 상투적인 장면이라도 일단 쓰고 본다. 그냥 끝까지 써보는 거, 넘어가는 게 좋다. 끝을 봐야 친구나 주변사람들에게도 읽힐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도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을 때 남의 얘기를 반영할 수 있다. 당장은 부끄럽더라도 초기단계에서 많이 보여주는 게 좋다.“며 글쓰기 방법도 들려줬다. 글쓰기의 기본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교하도서관의 이번 행사는 박찬욱 감독 이외에도 홍세화, 황석영 등 여러 분야의 명사를 초청할 예정이라니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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