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
길 위의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15 0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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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하고 섬뜩한 청소년의 모습 닮아

[북데일리] “폭주는 우리가 화가 나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어떻게? 졸라 폭력적으로. 말로 하면 안되냐고? 안 돼. 왜? 우리는 말을 못하니까. 말은 어른들 거니까. 하면 자기들이 이기는 거니까 자꾸 우리보고 대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 163쪽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2.문학동네)의 일부다. 소설은 길 위의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다. 때문에 과격하고 섬뜩하다. 소설 속 아이들은 모두 일상을 벗어나 일탈을 일삼는다. 가출을 하고 스스럼없이 집단 폭행을 가하고 성매매를 주도하고 서로를 유린한다.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아이들은 고아였거나 스스로 고아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제이가 있다. 제이는 태어나자 세상으로부터 버려졌고 자신을 키워준 양 엄마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재개발로 무너진 집에 혼자 남았지만 제이가 갈 곳은 보육원뿐이다. 보육원을 나온 제이는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과 마주했고 그것이 들려주는 고통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제이와 어린 시절을 보낸 동규 역시 부모님이 이혼을 한 뒤 혼자이긴 마찬가지다. 한때 함구증을 앓았던 동규는 자신의 말이 되어주었던 제이를 잊지 않는다. 재혼한 아빠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동규는 제이를 찾아 나선다. 다시 만난 제이는 동규가 기억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동규가 모르는 어떤 강력함이 있었고 그로 인해 제이는 거리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동규는 알고 있었다. 제이가 가진 슬픔을 느낄 수 있었고 그와 자신은 빛과 그림자처럼 언제나 함께 한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을 주고 그걸 피해갈 방법은 주지 않았지. 왜 태어났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가게 만들었고.” p. 134
 
 제이의 말처럼 제이는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제이와 함께 길 위에서 웃고 울었던 아이들은 모두 고아라는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돌아갔다. 지금도 길 위에는 수많은 제이나 동규가 존재할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그들의 화를 분출하면서 말이다. 
 
 소설에서 김영하는 무척 냉소적이다. 잔혹하고 끔찍한 일들을 너무도 친절하게 자세히 묘사하면서도 무심함을 잃지 않는다. 어쩌면 그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비행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 어른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태어남과 동시에 고통의 날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가혹한 생이라는 운명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이 소설은 누구를 위한 소설이며 누가 읽어야 할 소설일까. 방법을 모른 채 아이들에게 대화를 하자고 달려드는 어른들인가, 아니면 혼란과 방황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인가.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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