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명작 읽을 기회
프루스트 명작 읽을 기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11 0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릿하고 아득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북데일리] 기억이란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것일까.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2012.민음사) 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지만 그 느림이 나쁘지 않다. 세밀한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머리 속에 그 풍경, 그 장면이 떠오른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차 마음은 어머니의 곁에 두고 있는 화자의 애타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보낸 시절을 낱낱이 고백하는 듯다. 잊지 않으려고 간직하려고 말이다. 때문에 이 소설은 아득하고 아릿하다.
 
 가족과 함께 보낸 순간들과 그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일과와 행동 하나 하나를 나열하듯 소설은 이어진다. 산책을 하고 성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은 모두 어른들의 몫이지만 어린 소년은 전부 가슴에 품은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이 된 지금, 기억을 더듬어 그 길을 찾아 나선다.
 
 ‘주변 길은 사라졌고, 또 그 길을 밟은 이들이나, 그 길을 밟은 이들에 대한 추억도 사라졌다. 때로는 한 조각 풍경이 오늘날까지도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내 상념 속에서 꽃이 만발한 델로스 섬처럼 불확실하게 떠돌아다니지만, 난 그것이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서―어쩌면 단순히 어떤 꿈에서―왔는지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을, 내 정신적인 토양의 깊은 지층으로, 아직도 내가 기대고 있는 견고한 땅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사물들을, 존재들을 믿었다. 내가 이 두 길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물들이나 존재들만이 아직도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직도 내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것이다.’ <1권 315~316쪽>
 
 다시 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글 속에 가득하다. 1권이 주인공인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2권에서는 스완에 대한 이야기다. 스완이 화류계의 여인 오데트라를 만나 사랑하고 그녀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을 들려준다. 스완은 오데트의 행동 하나 하나를 집중한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 그녀가 참석하는 파티, 음악회, 공연에 신경을 쓰느라 기존의 그와 관계된 사람들과 교류가 끊어진다. 그가 연구하던 일도 진전이 없다.   
 
 ‘삶의 다른 시기에는 어떤 사람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나 행동에 아무 가치도 없는 것처럼 보여, 누가 그런 것에 대해 수다를 떨어도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또 그 말을 듣는 동안에도 그의 주의력 중 가장 저속한 부분만이 관심을 기울였으므로, 그런 순간에는 자신이 가장 형편없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이 낯선 시기에는 개인적인 것이 너무도 심오한 그 무언가를 지니게 되었으므로, 한 여인의 아주 작은 일과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듯 느껴지는 이 호기심은, 역사에 대한 그의 지난날 호기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2권 155쪽>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길도 거리도 세월처럼 덧없다.’ <2권 407쪽>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행이다. 그 여행은 생인 것이다. 덧없는 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손 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천천히 느리게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에 빠져 그 시절의 문화, 예술, 종교, 정치, 시대적 배경을 모른 채 그저 그 길을 따라 걷는 느낌으로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