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설화를 소설로
바리데기 설화를 소설로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09 0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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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버려진 삶, 섬세히 다뤄

 [북데일리] 슬픈 눈망울의 소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의 모든 절망과 고통을 다 안다는 얼굴이다.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프린세스 바리>(2012.다산책방)는 표지부터 행복이 아닌 불행을 예고한다. 바리데기는 잘 알려진 대로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려졌지만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구해오는 설화 속 인물이다. 소설은 설화를 모티브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 바리는 아들을 원했던 연탄공장 사장의 일곱째 딸로 태어났지만 산파에게 버려졌다. 산파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과 헤어진 후 산파가 되었다. 바리를 데리고 수인선이 지나는 인천의 시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약초를 제조하여 시장 상인들에게 팔았고, 사창가인 옐로우하우스에 종사하는 여자들인 유리를 상대로 돈을 벌었다. 산파의 친구 토끼는 곡물상을 했다. 수인선이 폐쇄되기 전이라 항상 상인들이 북적였다.
 
산파는 바리에 대한 사랑은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리는 바보 아닌 바보로 또래의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다. 산파와, 토끼 할머니, 수선집을 하며 감옥에 간 아들의 손자를 키우는 청하사 할머니와 손자 청하가 유일한 친구였다.
 
 수인선의 폐쇄로 시장의 활기는 사라졌고 산파는 병이 들었다. 산파는 평생 다뤄온 독초 사용법을 바리에게 알려주고 자신의 죽음을 부탁한다. 그때부터 바리는 죽음을 인도한다. 산파, 청하사 할머니, 엘로우하우스의 유리였던 연슬언니와 하얀대문의 할아버지까지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죽음을 돕는다. 산파가 죽고 바리는 자신의 친 부모를 찾아갔지만 그냥 돌아오고 만다. 산파가 그랬듯 약초를 팔고 처음부터 혼자였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소설은 버려진 삶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다룬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댁에서 외면받은 산파, 중국에서 엄마를 찾아 온 나나진과 공단의 굴뚝을 청소하며 바리와 미래를 약속했던 청하를 비롯하여 수인선의 폐쇄로 상권이 사라지고 방치된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바리데기는 생명수를 구해오지만 소설 속 바리는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죽음을 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버거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파가 말한 죽음은 삶인 것이다. 삶을 파헤치고 그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 변두리에 속한 고단하고 힘겨운 그들을 기억하고 도와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지도 모른다.
 
 ‘산파는 말했다. 죽음이 두려워 피하다 보니 죽음 한 가운데에 들어가 있더라고. 그래서 죽음을 파헤치고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봤더니 죽음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약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은 잠시니까 자신이 먼저 죽음으로 다가서는 것이라고. 자신이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곁에서 내가 도와주면 편안히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다고. 나에게 그 길로 인도해달라고 부탁했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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