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운명, 그래도 살아야
빌어먹을 운명, 그래도 살아야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0.31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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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인권, 약자가 주인공...희망을 말하다

[북데일리] <추천> 김하경의 소설집 <워커바웃>(2012. 삶이보이는창)은 나와 다르지 않은 소시민의 삶을 다뤘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혼자만 앓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하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분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소설이 아닌 누군가의 일기처럼 다가온다.
 
 표제작 <워커바웃>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고 사는 프리랜서인 한홍이가 율포조선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율포로 향하며 시작한다. 25년 전 노동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굴뚝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와 그들을 지지하고 걱정하는 그들의 가족과 동료를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족 모두가 힘들었기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율포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마주하고 그들이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을 응원하며 자신의 취재를 도와주는 발데르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들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말하게 되었다는 것을. 같은 마음으로, 같은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 비로소 굴뚝 위 사람들과 굴뚝 아래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었다.’ 198쪽
 
 이 단편을 읽으면서 김진숙과 크레인을 떠올린다. 함께 염려하고 기도했던 순간들을 말이다. 아버지의 삶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홍이가 굴뚝 집회 현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같이 가는 것이다.
 
 <초란>은 과거 노동 운동의 지도자였던 강준을 통해 여전히 노동 운동의 현실은 아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 강준에겐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 과거 함께 노동 운동을 하던 친구 영호가 감옥에서 죽은 것이다. 그 뒤로 강준은 그 일과 관련된 이들과는 연락을 끊고 시골로 들어와 닭은 키운다. 그러다 늦었지만 영호의 추모비를 세우는 행사로 후배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강준을 통해 1980년대를 마주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는 강준의 말은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1980년대처럼 싸우라는 말이 아이다. 그렇게 싸울 수도 없꼬. 지금은 분명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아무리 세상이 절망적이라 캐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데이. 그 유일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촛불 시민이 아무리 거리로 몰려나와도, 인터넷 누리꾼이 아무리 떠들어싸도, 조직적으로 되지 않으모 반짝하고 끝나고 마는 기라. 눈을 뭉칠라카모 먼저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가? 그 작은 덩어리를 굴리모 많은 눈들이 거 들러붙어 큰 덩어리가 되는 기라. 그 작은 덩어리 하나하나가 노동조합 아이가?’  69~70쪽
 
 촛불 시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동참을 유도하는 <지르 자자! 찌찌!>, 교통사고로 뇌사자가 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안타까운 의료 현실을 고발하는 <누가 죽었어요?>, 개혁을 꿈꿨지만 당에 이용만 당하고 빚만 지고 만 씁쓸한 정치 현장을 보여주는 <비밀과 거짓말>, 사회적 약자지만 보호받지 못한 채 결국 불행으로 생을 마감하는 둘례와 윤철의 이야기 <둘례전>은 모두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준다. 
 
 김하경은 힘겨운 현실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인물을 내세웠지만 포기를 말하는 대신 앞으로 나가가라고 말한다. 강준의 말처럼 인생에는 연습도 실험도 없으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이다.
 
 ‘어차피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실험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실전이 있을 뿐이다. 분명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멈출 수도 없다. 그래서 간다. 빌어먹을……. 그게 내 운명이다.’  45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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