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맹문재가 끓여주는 `따뜻한 라면`
시인 맹문재가 끓여주는 `따뜻한 라면`
  • 북데일리
  • 승인 2006.01.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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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의 세 번째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창비. 2005)는 `나에 대한 연민`과 `나 이외의 연민` 사이, 어딘가 서 있다.

그의 시가 나약한 `자기 연민`에 쉽게 빠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인간을 향한 연민` 혹은 `세상을 향한 연민`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비록 `인상된 대출금 이자를 확인할 때와 사십이 넘은 사실에 새삼 놀라는` (`사십을 생각한다` 중) 평범한 가장이지만 결코 가난하고 나이 먹은 시인 자신에 대한 연민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대신 자신을 포함한 그가 알고 있는 인물들, 또 그렇지 않은 인물과 사물을 통해 자기 연민의 공감대를 확장한다.

그가 쉽게 찾을 수 없는 서울의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때쯤 췌장암에 걸린 그의 고모님은 `문재가 여기에 사는데, 문재가 여기에 사는데`라며 `목덜미에 찰랑찰랑 닿는 목욕탕의 물결에도 칼날에 닿은 듯 어지러움을 느끼는` 그를 찾다가 `하늘까지 그냥` 가시고 만다.(`안부` 중)

캄캄한 밤하늘 아래서 하늘만 바라보는 시인의 눈 속으로 `며칠 앓던 동석이 어머니`와 `대구에서 짜장면 배달을 하다가 트럭에 깔린 외아들 동석이`는 별똥별로 떨어지고, `아침마다 우리 집에 와 며느리를 흉보던 선희 할머니`도, `작은아들을 따라 경기도 안산으로 갔던 형숙이 할아버지`도 별똥별로 떨어진다. (`별똥별` 중)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기에 여념 없는 시인 앞에서 나무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묵묵한 존재이다. (`책이 무거운 이유` 중)

그에게 책이 무거운 이유는 책이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맹문재의 시는 `섬세한 감수성`이나 `가슴을 치는 표현력`같은 시적 장치는 사실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다소 뭉툭한 그의 시는 해설자 이경수의 말처럼 `화장기 없는 맨 얼굴`과도 같다. 그래서 복잡하지 않고 진실하다.

시인은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집에 들어서면 마음이 놓인다`고 고백한다(`배수진을 친 집` 중).

또 젊은 시절 그의 영웅이었던 전태일이 멋지게 배수진을 친 것 처럼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배수진을 친 집이 있기에 그림자마저 얼었어도 들어서기만 하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시인은 곧 `돈을 움켜쥔 판사들의 손을 멍들게 하고 포주들의 얼굴을 절구 찧듯 뭉개는`(`뿔` 중) 사람들의 `뿔`을 발견한다.

이렇듯 맹문재는 가난과 고뇌를 이겨낼 수 있는 다소 희망적인 코드를 제시하며 자칫하면 곤두박질칠 수 있는 연민을 따뜻하게 포장할 줄 아는 면모를 보인다.

요즘처럼 추운 날, 시인 맹문재가 끓여주는 `양이 많아야 한 입이라도 더 먹을 수 있기에 물을 많이 넣고 퍼지도록 끓인`(`라면을 한 개 더 삶다` 중) 그 라면을 한 입 먹고 싶다.

[북데일리 조한별 객원기자] star2new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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