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줌의 언어가 할 수 있는 일
한줌의 언어가 할 수 있는 일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0.17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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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 기자의 유쾌함, 독서의 즐거움

[북데일리]<포스트 잇> 123권의 책이 한 권에 실렸다. <책읽기 좋은날>(책읽는수요일.2012)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다혜 기자의 유쾌함과 독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한 시집을 통해 느끼는 그녀만의 사유다.

‘언어 공부의 효용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메뉴판을 읽고 주문할 때, 또 하나는 그 언어로 쓰인 시를 읽을 때다. 시어는 유독 단어 하나하나, 구두점 하나하나가 제각기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처럼 흐르며 서로 엮이고 관계를 맺어 새로운 길을 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로 옮겨서는 그 즐거움을 온전히 맛볼 수가 없다. 특히 시를 소리 내 읽을 때 그렇다. 신간 리뷰를 위해 최영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시>를 보다가 작은 소리로 꺅 하는 비명을 지른 것은 좋아했던 시를 여러 편 다시 만나서였다. 그중 하나가 자크 프레베르의 ‘알리칸테’다.

프레베르의 시는 지극히 영상적이다(회화적이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러니까, 카메라가 팬을 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에 빠져들게 된다. 대로는 줌인, 줌아웃하는 느낌도 받는다. 거기에 혀끝에서 미끄러지는 그 프랑스어만의 느낌이라니.

 

탁자 위에 오렌지 한 개/ 양탄자 위에 너의 옷/ 그리고 내 침대 속의 너/ 지금의 달콤한 현재/ 밤의 신선함/ 내 삶의 다사로움.

 

이국의 밤 냄새랄까……. 나른하고, 임가엔 어쩔 수 없는 미소가 반쯤 걸려 있고, 따뜻하고 상쾌한 바람과, 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내일이 두렵지 않은 마음 같은 게 마구 엉켜 있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감각적인 즐거움을, 이 시 한 편이 훅 불어 넣는다. 한줌의 언어가 할 수 있는 둘도 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66쪽~68쪽 중에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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