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찾아낸 보물같은 단어 `통섭`
5년만에 찾아낸 보물같은 단어 `통섭`
  • 북데일리
  • 승인 2006.01.02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비통혈(脾統血)`이라는 생리(生理)는 `비(脾)가 혈(血)을 통섭(統攝)한다`는 뜻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中)의 역할을 하는 장기는 비장(脾臟)과 위장(胃臟)이다. 비위(脾胃)는 기혈(氣血)을 통섭(統攝)하고 조화(調和)하고 보전(保全)하는 중기(中氣)의 장부다.

비장은 적백혈구를 제조, 파괴 또는 정리하며 혈구를 저장하고 항체를 생산한다. 또 기혈의 훼손을 보충하고 조절한다. 어혈이 심하면 비가 감당하지 못하여 기능을 잃고 마는데 당뇨, 악성빈혈, 내출현, 만성소화불량, 만성피로, 의지박약증, 백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기혈에 대한 비위의 이른바 `통섭`은 생명활동의 중요한 기능이다. 불교와 성리학, 최한기의 기학(氣學)과 원효의 화엄사상에 대한 설명에 자주 등장하는 통섭은 `큰 줄기를 잡다` 혹은 `모든 것을 다르린다`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의미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가 장대익(과학철학. 박사과정)씨는 사회생물학의 아버지 에드워드 윌슨(77)의 98년 작 를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 5년을 고심했다.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을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책은 모든 학제의 통합적 지식을 모색한다.

는 `con-` 은 영어로 `with`, 즉 `함께`라는 뜻을 갖고 있고 `salire`는 `to leap` 즉 `뛰어오르다` 또는 `뛰어넘다`라는 뜻이다. Consilence의 정의는 한마디로 `jumping together` 즉 `더불어 넘나듦`이다.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역자서문에서 최교수는 “내가 원하는 우리말 단어를 참빗으로 이를 잡듯 이른바 `서캐훑이`를 한 끝에 찾은 단어가 <통섭>”이라고 밝혔다. 통섭을 通涉으로 쓰면 `사물에 널리 통함`과 `경계를 넘나듦`의 뜻으로도 새겨진다.

결국 책은 <통섭, 지식의 대통합>(사이언스북스. 2005)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윌슨의 저술 의도대로 "사물에 널리 통하는 원리로 학문의 큰 줄기를 잡고자"하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일본에서는 `통합-일체화`, 중국어권에서는 `융통`으로 번역됐다.

책은 기혈을 `통섭`하는 비장처럼 각 학문부문을 통섭하는 `학문의 비장`을 찾아가려는 지적 추구의 결과물이다. 21세기의 아카데미즘의 화두로 등장한 `학문의 대통합`은 나뉜 지식을 통합하여 전체적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윌슨은 21세기 학문은 결국 자연과학과 창조적 예술을 바탕으로 한 인문학으로 양분될 것이며, 사회과학은 생물학이나 인문학에 자연스레 흡수될 것이라고 보면서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하려는 인간 지성의 위대한 과업은 계속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인간과 문명을 `통섭`하지 못하면 지적 어혈이 생겨 지성사의 발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 `통섭`에 관한 학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듯 싶다.

"인간에 관한 과학이 자연과학을 포함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과학도 앞으로 인간에 관한 과학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두 과학은 머지않아 하나의 과학이 될 것이다." (혁명가 칼 마르크스)

(그림 =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1708년작 `천체도`) [북데일리 노수진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