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습작시에 답장해 준 `친절한 시인`
안도현 습작시에 답장해 준 `친절한 시인`
  • 북데일리
  • 승인 2006.01.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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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과, 따뜻한 인간미로 사랑받는 시인 안도현에게도 습작시절은 있었다. 습작시를 평가받고 싶던 그는 평소 존경하던 시인에게 시를 보냈는데 친절하게도 매번 장문의 답장을 보내주어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는데 큰 힘이 됐다. 안도현에게 답장을 보내줬던 주인공은 30년 시력(詩歷)의 주인공 시인 이동순(56)이다.

70년대 후반 대구의 어느 화랑에서 열린 ‘자유시’ 시화전에서 이동순, 이하석, 정호승 같은 시인들을 만나며 시인의 꿈을 키워가던 안도현은 “맨드라미의 하늘도 시들어 / 꽃피던 마을은 이제 처참하다”로 시작하는 이동순의 등단 작 `마왕의 잠` 첫머리에 사로잡혔다.

자신에게 언제나 ‘높다란’ 스승이었던 이동순에게 보냈던 습작시에 대한 답장은 자상하고 길었다. 이동순에게 경상도식 발음으로 ‘ㄴ’이 탈락된 어린 ‘도혀이’로 불렸던 안도현은 유명한 시인이 되어서도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여긴다.

이동순이 직접 체험한 타클라마칸, 몽골, 쿠차를 거친 실크로드 여정을 시로 노래한 <마음 사막>(문학동네, 2005)에서 모래바람과 타들어 갈 듯한 열기 가운데서도 평정과 여유를 잃지 않는 시인의 심정은 돋보인다.

“나는 고비와 타클라마칸, 두 거대 사막의 한가운데에 홀로 우두커니 서서 온통 모래더미로 둘러싸인 광막한 지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바로 이 사막의 광경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지요. 그리하여 몽골과 실크로드를 다섯 해 동안이나 헤매 다녔던 체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배가 되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그가 목격한 사막은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몽골의 울란바타르 / 간등이란 이름의 절간 앞에 막 당도했습니다 / 대웅전 앞 작은 건물로 들어서니 / 마당 한 켠에 앉아 / 혼자 피리부는 사람 있습니다 /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는 소경입니다 / 흰자위만 끔뻑끔뻑하면서 / 구슬픈 곡조하나 불고 난 다음 / 그는 말했습니다 / 부처님이 자기 눈 뜨게 해주실 때까지 / 계속 피리 불겠노라고 / 그 말 듣는 순간 / 나는 가슴이 울먹거렸습니다 / 소경이 빛 얻는 날 과연 언제일까 / 담 모퉁이 돌아나오는데 / 등 뒤로 맑은 피리 소리 들려왔습니다” (본문 중)

‘피리부는 소경’ 에서 뜨거운 인간애가 느껴진다. 몽골에서 발견한 눈먼 소경의 간절함은 시인에게 절로 외경의 자세를 갖게 만들었다. 낯선 땅에서도 인간과 삶을 발견하는 시인의 구도자적 자세는 여전히 여유롭고, 깊다.

(사진 = photograph by R. Pelisson, SaharaMet) [북데일리 정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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