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시가 내게로 들어왔다.”
고은 시인 “시가 내게로 들어왔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10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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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독서문화축제...북밴과 함께 행복한 시간
염태영 수원시장과 고은 시인

[북데일리] “시가 내게로 들어왔다.” 

고은 시인은 담담히 말했다. 시를 쓴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경지에 이른, 시인다운 표현이었다. 좌중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9월 8일 수원 선경도서관에서 북콘서트가 열렸다. ‘2012 수원독서문화축제’의 시작을 여는 오프닝 공연이었다. 이번 행사는 수원시가 4년 째 진행하고 있는 행사로 인문학 중심도시로 거듭나고자 시민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이를 위해 수원시는 문학의 거장 고은 시인을 초청, 인문숲으로의 행복한 여행을 마련했다.

이날 행사의 서막은 북밴의 오프닝 공연이었다. 이어 고은 시인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북 콘서트가 시작됐다. 먼저 고은 시인은 행사에 초대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은 시인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문화제와 도서관이 많은 도시에 오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글과 문학을 즐길 줄 모릅니다. 각종 디지털기기를 통한 영향이겠지요.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한다 하더라도 문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진정한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 문학콘서트가 열려 기쁩니다.”

고은 시인은 1958년에 시 ‘폐결핵’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낸 책을 셀 수 없을 정도다. 시인은 "몇 권의 책을 냈느냐"란 질문에 대해 “초창기에는 알고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수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올해 나온 책이 최초의 책이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고은 시인은 국내외의 문학상 15개 훈장 2개를 수상했다. 세계 25개국에 시인의 책이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시인의 연보에 있는 글귀처럼 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내가 죽고 나서 몇 년 뒤 누군가가 내 무덤을 파헤쳐본다면 거기에도 내 뼈 대신 내가 그 무덤의 어둠 속에서 쓴 시로 꽉 차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가 살지 않는 미래까지도 내 시의 현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은 시인 연보 중

시인은 일제식민지통치, 6. 25 전쟁, 유신, 민주화 운동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온 몸으로 품었다. 과연 그에게 시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한마디로 철학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라는 것이 있다. 내가 썼지만 내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시가 되어 내게로 왔다.”

이어 염태영 수원시장의 시 낭독 순서가 진행됐다. 학창시절 릴케의 시를 가슴에 품고 나닐 정도로 문학도였다는 그가 들고 온 시는 안도현의 ‘가을 햇볕’이었다. 

하이라이트는 고은 시인의 시 낭독이었다. 충남 태안 서산을 배경으로 지은 시 ‘꽃지에서’였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말씨엔 그와 정반대로 정취와 향수가 묻어났다.

시 낭독에 이어 북밴이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작곡한 노래 ‘꽃지에서’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시와 음율의 조화는 익어가는 가을처럼 애잔한 울림을 줬다.

앞서 고은 시인은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책을 한 권 선택한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면서도 “오늘 만큼은 대답을 하겠다.”며 한 권을 꼽았다. 바로 김구의 <백범일지>였다.

“여론이 정치적인 책이라 몰아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삶을 되돌아보면 거짓과 잘못이 많습니다. 자신을 깊게 성찰하고 되짚어 볼 대 필요한 서적입니다.”

관객의 얼굴에서 이날 행사의 흥겨움을 읽을 수 있다.

고은 시인은 그 책 한권으로 그 나이에도 여전히 삶을 고뇌하는 문학도임을 드러냈다. 관객은 웃음을 머금으며 노 시인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을 집중했다. 특히 이어지는 시인의 말에 깊은 감명을 드러냈다.

“살다보면 눈물이 없어지는데 이 책은 모자란 눈물을 흘리기 위해 매년 한 번씩 읽습니다. 책은 참으로 거짓이 없습니다. 단 한 마디도 없어 미치겠습니다.”

북밴은 이에 화답하듯, 고은 시인의 ‘나무의 앞’을 오선지에 옮겨 아름다운 음악으로 살려냈다. 수원시민들은 만나기 힘든 고매한 시인을 만나는 기쁨, 시가 노래가 되는 마법, 그리고 더없이 좋은 날씨로 보기드문 호사를 누렸다. 그 증거는 그들의 얼굴이었다.

한편 행사에는 수원 문인대표와 시민대표의 시 낭독이 이어져 더욱 풍성한 수원독서문화축제를 만들어냈다.

친절하게 사인해주는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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