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 성공문턱서 몸을 숨긴 이유
바그너, 성공문턱서 몸을 숨긴 이유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0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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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책속의 지식>취리히는 망명자들의 도시다. 184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이 주도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궁정 지휘자였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도 혁명의 격랑에 휩쓸렸다.

바그너는 오페라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급진적 예술가 그룹에 관여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주의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고 봉기가 일어났을 때 무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바그너는 파리로 피신했고 1861년 정치적으로 해금될 때까지 12년간 망명객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를 따듯하게 맞아준 도시가 스위스 취히리였다.

바그너는 취히리에 도착한 뒤부터 지크프리트(게르만족 신화 속 영웅)의 죽음을 주제로 한 오페라를 썼다. 1부는 ‘라인의 황금’, 2부는 ‘발퀴레’, 3부는 지크프리트의 젊은 시절을 그린 ‘지크프리트’가 있다. ※ 이때 만든 ‘지크프리트’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365일 유럽 클래식 기행>(아트북스.2012)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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