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 웃게 만드는 이야기
미친 듯 웃게 만드는 이야기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8.16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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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심윤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북데일리] <사랑이 달리다> 란 제목에 괜히 신난다. 많은 이가 기다렸을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작가 심윤경의 소설이다. 사랑을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사랑 그 스스로가 달린다니, 근사하지 않은가. 고백하자면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다. <사랑이 달리다>2012. 문학동네)는 결코 아련하거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이란 단어로 꽉 채워진 덜 자란 어른들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 서른 아홉 혜나의 가족은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인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부족한 거 없이 살던 혜나 삼남매에게 위기가 닥친 건 아빠 김덕만의 가출이다. 큰 아들보다 어린 여자를 만나 황혼 이혼을 선택한 아빠. 이화여대 출신의 고고한 엄마 임현명 여사는 재산청구를 거절했고 삼남매에게 시련은 폭풍처럼 쏟아졌다. 사건 꾸러미를 달고 다니는 작은오빠 학원,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한 큰오빠 철원, 돈 많은 아빠에 성실한 남편 성민까지 세상이 천국이었던 그녀에게 지옥의 문이 열린 것이다. 남편까지 지방으로 발령을 받은 상황이다. 이런 사태에도 작은오빠는 혜나가 원하는 일이면 뭐든지 하 해준다며 허세를 부린다. 어쩔 수 없이 커피 값이라도 감당할 목적으로 혜나는 작은오빠의 소개로 욱연의 산부인과 놀이방에 취직한다.

욱연, 그는 운명이었다. 세상이 다 아는 실력 좋고 친절하고 스마트한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서른 아홉에도 사랑이 달려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혜나에겐 정말 착한 남편이 있었고 욱연에게도 유학 중인 아이들과 아내가 있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게 상황과 형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니 어쩌란 말인가.

사랑은 노년의 임여사에게도 찾아온다. 학원은 득을 보려 사채업자 박진석 회장에게 어머니를 소개한다. 아내와 딸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사는 박회장과 어머니는 좋은 사이로 발전한다. 박회장은 투자를 바라는 학원이 아니라 솔직하고 당당한 혜나에게 더 정을 느낀다. 사업이란 사업은 모두 말아 먹은 학원은 고소를 당하고 만다. 그 와중에 학원은 혜나의 사랑을 지지한다. 그녀는 성민에게 고백하고 별거에 들어간다. 둘 사이에 아이가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소설은 정말 미친 듯 재미있다. 읽는 내내 킥킥거린다. 심윤경은 작정하고 이 소설을 쓴 게 분명하다.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에도 철이 들 수 있다고, 막장 가족의 결말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혜나의 사랑이 탄탄대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달리는 걸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저 그 속도에 몸을 실을 뿐.

‘사랑은 비난이나 경멸보다 빨랐다. 심지어 시간보다도 빨랐다. 미래조차 까마득한 저 뒤에 내팽겨쳐버리고, 내 눈먼 사랑은 그저 두 팔을 벌리고 그를 향해 달린다. 엄마의 말이 옳았다. 혼신을 다한 사랑이란 훈장과도 같은 면이 있었다. 죽을지 살지 모르고 덤벼드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 후련함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팔다리가 없어졌거나 눈이 안 보일지라도 모르지만, 그가 그렇게 몸을 던진 적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그 작은 금속은 영원히 그의 명예다. 훗날 우리가 어떻게 살든, 죽든.’ p.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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